[심야담판 이모저모]鄭후보 제의로 회담후 포장마차로 직행

  • 입력 2002년 11월 16일 02시 10분


민주당 노무현 후보(오른쪽)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16일 0시 40분 경 극적인 후보단일화 합의를 이끌어낸 뒤 국회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으로 ‘러브샷’을 하며 단합을 과시하고 있다. 박경모기자 momo@donga.com
민주당 노무현 후보(오른쪽)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16일 0시 40분 경 극적인 후보단일화 합의를 이끌어낸 뒤 국회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으로 ‘러브샷’을 하며 단합을 과시하고 있다. 박경모기자 momo@donga.com
긴장, 초조, 불안, 기대, 함성….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가 극적인 단일화 합의를 이뤄낸 15일 밤 국회 귀빈식당에 마련된 회담장 안팎의 분위기는 수시로 바뀌었다.

○…두 후보의 회담은 배석자 없이 15일 10시반경부터 16일 0시10분경까지 약 100분간 이뤄졌다. 그 후 약 30분간 양당 대변인과 비서실장이 두 후보와 함께 합의문 작성 작업에 들어갔다.

0시40분경. 노 후보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정 후보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회담장에서 나와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왔다.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대변인과 국민통합21 김행(金杏) 대변인이 8개항의 합의를 번갈아 읽어 내려가자, 기자회견장에 있던 양당 소속 의원과 관계자 100여명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큰 박수를 보냈다.

합의문 발표가 끝난 뒤 노 후보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 후보에게 악수를 청하자, 정 후보는 노 후보를 얼싸안았고 다시 “와!” 하는 큰 환호가 터졌다.

정 후보가 “국민에게 월드컵 감동의 2배 이상의 감동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히자, 노 후보는 “좋은 말은 자기가 다해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허물없이 대답했고, 회견장에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김행 대변인의 눈가에 감격의 눈물이 이미 맺혔고, 민주당 김희선(金希宣)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해 ‘철새’ 비판을 받고 있는 김민석(金民錫) 전 의원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두 후보는 기자회견이 끝난 뒤 여의도 양당 당사의 중간 지점쯤에 있는 한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 장면을 연출해 양당 관계자를 또 한번 감격시켰다.

두 후보의 포장마차 회동은 회담 도중 “다 끝난 뒤 소주 한 잔 합시다”는 정 후보의 제안에 따른 것.

두 후보는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종종 서로의 팔짱을 낀 이른바 ‘러브샷’을 하기도 했다.

정 후보는 “단일화가 된다면 국민 여망을 이루고, 정치 틀을 뒤바꿀 수 있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노 후보는 “우리 두 사람 모두 최선을 다해 국민에게 희망의 정치를 보여주자”고 화답했다.

○…두 후보는 회담 시작 전부터 ‘반 이회창(李會昌) 연대’를 과시했다.

▽정 후보〓오늘 오후 한국교총 초청 토론회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 얘기를 많이 했다.

▽노 후보〓잘 했다.

▽정〓요즘 부산에서 (노 후보) 지지율 많이 올랐다면서요. 87년 김영삼(金泳三)-김대중(金大中) 후보 단일화 협상하는데 기자들이 다 나갔는데 한 명이 (협상장에) 남아 있어서 책상 밑에서 받아 적었다고 하죠.

▽노〓그런 일이 있었나. 그 때 참 어려웠다.

▽정〓(그 때 단일화가 됐으면) 역사가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노〓그랬다면 나도 고생 덜 했을 텐데…. (이렇게 기자들이 많이 모인 것도) 후보단일화가 국민들의 뜻으로 봐도 되겠죠.

▽기자들〓오늘 잘 되겠습니까.

▽정〓잘 되지 않겠나.

▽노〓안 나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얘기해야죠. (정 후보의) 오늘 교총 연설은 명연설이었다. 이회창 후보가 (듣기) 껄끄러웠을 것이다.

▽기자들〓단일화 방식도 논의합니까.

▽정〓기자들이 하라면 해야지.

▽노〓방식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제약 없이 다 할 것이다. 넓게도 얘기하고, 세밀하게도 얘기할 것이다.

이날 회담장 주변에는 취재진 150여명과 양당 관계자 100여명 등이 몰려 큰 관심을 나타냈다.

○…노 후보는 이에 앞서 오후 9시부터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선대위 본부장단과 회담에 대한 전략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20여명의 간부들은 △정 후보의 화법 △정 후보측의 예상 전술 등에 대해 노 후보에게 상세한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원은 “정 후보는 대화 도중 엉뚱한 얘기를 꺼내 상대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사오정 화법’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즉답을 피하고 신중하게 대처하라”고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정대철(鄭大哲) 선대위원장은 노 후보와 따로 만나 “정 후보와 합의가 되기 않으면 회담장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강한 주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후 노 후보측은 “노 후보가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큰 일을 이뤄냈다”고 만족해했다.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는 이날 한국교총토론회, 인천방송 토론회 등에 잇따라 참석하느라 노무현 후보와의 회담에 별다른 준비를 못했다. 회담 장소에 도착한 정 후보는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참모들과 오늘 회담 ‘전략’을 구상한 게 전부였다”며 “후보단일화는 국민의 뜻인만큼 서로를 충분히 알아간다는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 후보는 이날 각종 토론회에서 민주당과 노 후보에 대한 공격을 일절 자제하며 회담에 임하는 자세를 짐작케 했다. 그는 회담 직전 참석한 인천방송 토론회에서 “노 후보는 상고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자정을 넘어 두 사람의 단일화 합의 소식이 전해지자 ‘성공하지 못할 야합’이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후보단일화가 현재의 ‘1강 2중’ 대선구도에 격변을 몰고 오고 그동안의 ‘이회창 대세론’에도 큰 타격을 미칠 비상상황으로 간주해 긴급대책 마련에 나섰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두 사람의 단일화 합의는 부패정권을 연장시키려는 야합일 뿐”이라며 “이들의 약속처럼 실제 단일화가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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