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기간 정쟁중단' 약속 좌초 위기

  • 입력 2002년 5월 26일 16시 31분


월드컵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명분으로 한 정치권의 정쟁중단 약속이 하루만에 좌초 위기에 빠졌다.

발단은 검찰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둘째아들 홍업(弘業)씨 소환조사를 월드컵대회가 끝난 뒤로 연기하기로 한데서 비롯됐다.

당장 한나라당은 검찰의 홍업씨 소환 연기에 대해 "정쟁 중단 합의를 악용한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월드컵기간과 겹친 지방선거에서 대통령 아들 비리의 쟁점화를 피하려는 민주당측의 정략적 발상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25일 선거대책위 회의에서 "검찰의 수사 중단방침으로 비리문제를 정쟁으로 호도하려는 정부와 검찰의 인식이 드러났고, 청와대가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도 26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 내부에 엄정 수사하자는 입장과 정치검찰의 준동이라는 두 개의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며 "홍업씨 소환 연기는 일부 정치검사들의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규정했다.

최근 검찰 주변에서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장남 정연(正淵)씨의 병적기록부 조작의혹, 주가조작 연루설 등이 또다시 흘러나온 것도 궁지에 몰린 여권을 비호하려는 일부 정치검찰의 음모라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홍업씨 문제로 정치권이 사실상 합의했던 '정쟁중단' 약속이 파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정쟁중단 약속을 깰 경우 한나라당도 부담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25일 열렸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본부장 회의를 마치고 나온 정범구(鄭範九) 대변인은 "검찰 수사방향에 대해 원내 제1당 대표가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이런 식의 속좁은 정치를 국민은 원치 않는다"며 한나라당 서 대표의 발언을 비판했다.

정 대변인은 "홍업씨에 대한 수사 방향과 일정 등은 검찰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며 "정치권은 정쟁을 중단하고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매진하는게 바람직하며, 한나라당은 자칫 속좁은 정치로 보여질 수 있는 모습을 자제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검찰이 홍업씨의 소환을 연기한 것은 월드컵 탓도 있지만 홍업씨의 혐의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뚜렷한 뭔가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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