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인제의 노동정책]“盧 현장중시-李 제도개혁”

  • 입력 2002년 3월 21일 18시 40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이인제(李仁濟) 노무현(盧武鉉) 두 후보는 공교롭게도 노동문제와 연(緣)이 깊다.

88년 13대 총선에서 당시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나란히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두 사람은 함께 노동위에서 활약했다. 이후 노 후보는 노동현장을 찾아다니며 노동자들의 처지를 대변했고 이 후보는 김영삼(金泳三) 정부에서 노동부장관까지 거치며 노동행정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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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노 후보를 ‘현장형 개혁주의자’로 평가할 수 있다면, 이 후보는 ‘실용적 중용노선’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후보의 역정〓88년 12월. 파업 10여일 째에 접어든 울산 현대중공업 노조 집회장. 노조의 초청을 받아 연사로 나선 당시 노 의원은 “여러분의 파업은 법률상 위법이다. 그러나 사람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지,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파업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앞서 부산상고 졸업 후 막노동판에서 일한 적도 있는 노 후보는 변호사 시절이던 87년 대우조선 사태 때 시위 중 숨진 노동자의 부검 및 장례식 문제로 경찰과 대치하던 노동자 편을 들다가 제3자 개입 및 장례식 방해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는 89년 3월에는 ‘노동탄압에 대처하지 못하는 제도정치권의 한계’를 이유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는 98년 8월 현대자동차 사태 때도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 자격으로 중재활동을 벌이는 등 노동현장을 계속 찾아다녔다.

반면 이 후보 측은 ‘실용적 개혁주의’ 노선을 걸어왔다고 말한다. 원내 진출 후 노동위를 자원, 4년 내내 노동위원으로 활동하는 과정에서도 대정부 질문이나 상임위 활동을 통해 운동권식 접근이 아닌 제도적 개혁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실제 노동부장관 취임 이후 그는 해고자 복직을 추진하고, 재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용보험제 실시를 위해 관련 법안 개정에 나섰다. 원진레이온 사태 해결도 이 후보 측이 단골로 내세우는 업적이다.

이 후보는 ‘무노동 부분임금’ 파동으로 경제 관련 부처의 반발을 사자 93년 6월 부총리와 상공자원부장관도 함께 자리한 기자회견에서 “노동행정은 노동부가 책임지는 것”이라며 단호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재계와 경제부처 반발로 무노동 부분임금은 철회됐고 해고자 복직도 사용자 측의 거센 반발에 밀려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3대 국회 노동위에서 두 사람과 함께 활약했던 한 현직 의원은 “당시 노 의원은 송곳으로 찌른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전투적이었던 반면 이 의원은 중도 보수적이었다”고 평했다.

▼노사정위 盧 “강화” 李 “개선”▼

▽두 후보의 노동 정책 비교〓몇 가지 현안에서 두 후보는 상당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우선 노사정위원회에 대해 노 후보는 노사정위가 실질적 사회협약기구로서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 후보는 “만장일치의 ‘사회적 합의기구’인 탓에 되는 일이 없다. 협의하고 토론하되 최종적으로는 정부가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쪽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후보는 나아가 합법적인 노동운동은 최대한 보장하되, 불법적인 노동운동은 엄단하는 단호한 정책추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주5일 근무제에 대해서도 노 후보는 노사정위의 합의를 전제로 찬성하는 입장인 반면, 이 후보는 “취지가 좋다고 무조건 시행할 수는 없다. 새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과 함께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의 평가〓대체로 노 후보에 좀더 호감을 갖고 있는 분위기다. 금융산업노조는 아예 독자적으로 19일 노 후보 지지를 결의하기도 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 후보는 노동부장관 시절 무노동 부분임금 등 인상적인 정책을 폈지만 보수적 성향”이라며 “노총 차원에서 누구를 지지할지를 논의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노 후보가 개혁적이고 친노동자적인 행보를 보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는 어느 쪽을 지지하기보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독자 정치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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