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잇단 의원모임 갑론을박]"당지도부 선거결과 책임져야"

  • 입력 2001년 10월 29일 18시 49분


29일 민주당은 10·25 재·보선 참패의 수습 방향을 둘러싼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하루종일 들끓었다.

오전에는 당내 개혁 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열린정치포럼과 당 확대간부회의가, 저녁에는 초·재선 의원들로 구성된 바른정치실천연구회와 당내 최대 규모의 의원 결집체인 중도개혁포럼이 각각 긴급 회동을 갖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갑론을박의 두 줄기는 ‘당정 쇄신이 먼저냐, 후보 조기 가시화가 먼저냐’에 모아졌지만 그 밑에는 민주당의 현주소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본질적인 갈등 구조가 숨어 있었다.

먼저 이날 열린정치포럼과 바른정치실천연구회의 긴급 모임은 한광옥(韓光玉) 대표의 전당대회 개최 시기 공론화 건의와 전날 열린 중도개혁포럼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강했다.

열린정치포럼과 바른정치실천연구회는 비교적 반(反) 동교동계 성향이 강한 소장파 의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한 대표와 ‘DJ 친위성향’으로 알려진 중도개혁포럼이 민심수습책으로 후보 조기 가시화 카드를 제기한 배경에는 당과 청와대에 포진하고 있는 ‘핵심 실세그룹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종의 ‘친위 쿠데타’ 기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논의가 완전한 대립각이 아니라는 점에서 후보 조기 가시화와 당정 쇄신의 병렬적 이행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적지않게 터져 나오고 있다.

▽소장파 의원들의 반격〓29일이 되면서 당정 쇄신론을 주창하는 소장파 의원들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먼저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열린정치포럼’ 회원들이 이날 오전 긴급 모임을 갖고 ‘선(先) 쇄신 요구’를 분명히 했다.

포럼 대표인 임채정(林采正) 의원은 모임 후 “지금이 비상사태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며 “민심 이반의 원인을 그대로 놔둔 채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로 가는 것은 민심 수습을 위한 올바른 수순이 아니고 근본적 치유책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한 참석자는 “당을 포함해 그동안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매사를 미봉으로 넘어갔다. 필사즉생(必死卽生) 외에는 길이 없다”고 말해 당과 청와대 등 관련자들의 책임론을 완곡하지만 확실하게 주장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또 당 일각의 ‘후보 조기 가시화’ 주장에 대해서는 “당이 전반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상황을 놔둔 채 후보를 빨리 결정하면 자칫 회복 불능의 상황을 자초할 수 있다”는 논리로 반박했다.

오전에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도 일부 참석자들이 후보 조기 가시화론을 주창했지만 선 쇄신론의 거센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최고위원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이인제(李仁濟) 노무현(盧武鉉) 최고위원이 후보 조기 가시화를, 김중권(金重權) 최고위원 등은 “쇄신 먼저”를 주장했다.

이날 밤 긴급소집된 ‘바른정치실천연구회’의 모임도 같은 맥락이었다. 모임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민심의 화살이 우리의 심장에 꽂혔다”며 “재·보궐선거의 민심에 먼저 답한 뒤 정치일정을 제시하는 것이 순서다”라고 정리해 선 쇄신론에 동참했다.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도 대구에서 “선거 결과에 대해 ‘이것은 내책임이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며 후보 조기 가시화론에 대해서는 “정략적 냄새가 풍긴다”고 쇄신론에 가세했다.

▽청와대의 이상 기류〓청와대도 28일 한 대표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면담 내용 발표에 대해 “너무 나갔다”며 제동을 걸었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이날 “(한 대표가) 개인적 건의와 생각을 대통령의 생각으로 발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후보 조기 가시화가 김 대통령의 확정된 뜻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동교동계 의원들이 왜 나서느냐”며 “그 사람들이 나서면 될 일도 안 된다”고 말했다. 전날 이훈평(李訓平) 조재환(趙在煥) 의원 등 일부 동교동계가 나서 후보 조기 가시화를 발설한 데 대한 불만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한 대표의 건의로 후보 조기 가시화론의 공론화가 이미 시작됐음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정기국회 이후’로 논의의 시기를 미뤘지만 한 번 물꼬가 터진 이상 주워담기는 어렵다는 것이 청와대측의 분위기다.

▽주춤하는 후보 조기 가시화론〓쇄신론자들의 거센 반격이 계속되자 후보 조기 가시화론자들이 한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이 29일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년 지방선거는 대선의 전초전이기 때문에 김 대통령과 새 후보중 누구의 깃발로 선거를 치를지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알 일”이라고 말해 후보 조기 가시화론의 불씨를 계속 살리려 했지만 당내 기류는 분명 쇄신론으로 흐르고 있었다.

공론화를 제기한 한 대표도 이날 MBC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발언이 와전됐다며 해명에 나섰고 이종걸(李鍾杰) 대표비서실장은 “대표의 건의 내용 중 무게가 실린 것은 당정 개편 문제였지 정치일정 논의가 아니었다”고 진화에 부심했다.

동교동계 김옥두(金玉斗) 의원은 당 대변인실을 통해 “일부 의원들이 개인 생각을 말한 것을 놓고 언론에서 동교동계 전체 의견인 것 처럼 보도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이날 밤 소집된 중도개혁포럼 전체회의에서도 이어졌다. 전날 운영위원회에서는 후보 조기 가시화 문제가 주로 거론됐지만 이날 논의의 초점은 인적 쇄신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정용관·윤종구·부형권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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