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닥잡은 美대북정책]美 '대화하되 검증' 강온 병행

  • 입력 2001년 6월 7일 18시 47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 시간) 발표한 대북정책 성명은 우리에게 기대와 부담을 동시에 안겨 주고 있다. 북한의 핵, 미사일, 재래식 군비 등에 대해 ‘포괄적 접근(comprehensive approach)의 틀’에서 진지하게 논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대화를 하되 의제는 확대하고 사안마다 검증하겠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단 것이어서 앞으로 북-미대화를 ‘클린턴식’이 아니라 ‘부시식’으로 할 것임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핵 활동 관련 제네바합의 이행 개선〓정부 당국자들은 부시대통령의 성명이 제네바합의 자체의 ‘개선(improvement)’이 아니라 그 ‘이행의 개선(improved implementation)’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당국자들은 이같은 언급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논란에 휩싸였던 제네바합의의 개정이나 수정과 화력발전소 대체 문제 등은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부시대통령이 밝힌 ‘이행의 개선’이 갖는 의미는 북한이 제네바합의 규정에 따라 경수로의 핵심 부품 인도 이전에 ‘과거 핵 활동’ 규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뜻이라는 것.

문제는 당초 2003년까지였던 경수로 건설이 2008년에나 1호기가 완공될 예정이어서 북한의 반발이 거셀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 있다.

북측은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 손실의 보상을 미측에 꾸준히 요구해온 반면 미측은 핵사찰에 초점을 맞춰 왔고 부시대통령이 이를 더욱 강조했다는 점에서 협상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미사일 개발 사업에 대한 검증 규제〓미사일 협상은 빌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타결 직전까지 갔던 것으로 알려져 다른 분야보다는 상대적으로 협상이 쉬운 분야로 보인다. 웬디 셔먼 전 대북정책조정관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북한이 미사일을 전량 폐기하겠다는 의사를 제시했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이 성명에서 △미사일 문제 해결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고 △클린턴행정부와 북한간의 협상 결과를 어디까지 인정할지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협상에 나설 주체가 얼마나 고위급이냐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미사일협상의 전개 상황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북한 조명록(趙明祿)군총정치국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문제 해결에 접근했던 만큼 고위급에서 원칙을 설정하고 실무자들의 협상이 이어질 때 진전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구상이라는 다른 변수도 있다. 미국의 MD 구상 강행에는 북한이라는 ‘불량국가’의 존재라는 명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세종연구소 이종석(李鍾奭)연구위원은 “미국이 MD 추진과 병행해서 북한과 협상할 용의를 가지고 있다면 미국의 미사일문제 해결 노력이 분명히 진전될 것이지만 북한이라는 ‘불량 국가’가 MD 추진의 전제조건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면 협상이 오히려 까다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북한 미사일 수출에 대한 보상 문제이다. 미사일 수출을 중단하는 대신 1년에 10억달러씩 3년간 총 30억달러를 보상하라는 북한의 요구를 부시행정부가 들어줄 것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 클린턴 행정부가 현금 보상은 아닌 경제 제재 완화와 국제기구의 대북 지원 등 간접적인 보상을 제시했지만 부시행정부가 이를 얼마나 참고할지는 의문이다.

▽재래식 군비 태세〓부시대통령의 성명에 재래식 군비 태세 항목이 들어있는데 대해 전문가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측이 북한에 대해 재래식 군비 통제 문제를 제기할 경우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라는 카드를 들고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재래식 군비 통제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른 불가침조약을 통해 남북이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을 보였고, 지난달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에서도 미측에 이런 입장을 전달했다.

또 정부는 최근 미국측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 이뤄질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간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 문제가 중점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입장까지 전달했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의 성명은 북한의 재래식 무기 위협이 주한미군 3만7000명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만큼 북-미간에도 다뤄 나갈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해결은 미국이 주(主)가 되지만 그 문제가 우리에게도 관심사인 것처럼 재래식 군비 태세 문제도 우리가 주가 되고 미측이 관심을 갖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미간 협의가 진행되더라도 한반도의 위협 요소를 없애는 차원에서 논의될 대상이라는 것. 따라서 부시대통령의 언급은 휴전선을 두고 대치하는 남북간의 군사적 신뢰구축조치(CBMs)를 얘기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이 동아시아 안보정책의 일환으로 주한미군의 안전을 염려하는 차원에서 북한의 재래식 군비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이지만 그 해결만큼은 남북간에 주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게 정부의 기대 섞인 전망이다.

<김영식·부형권기자·워싱턴〓한기흥특파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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