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워커힐호텔 표정]상봉기대에 '뜬눈밤샘'

  • 입력 2000년 8월 13일 19시 19분


그리운 가족을 찾아 15일 평양으로 떠날 남측 이산가족방문단이 13일부터 이틀간 묵게 될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은 이날 방북자와 배웅나온 가족, 몰려든 취재진으로 발디딜 틈 없이 붐볐다.

방북자들은 한결같이 큰 여행가방을 준비했으며 50년만에 가족을 만난다는 생각에 들뜬 모습들이었다. 이들은 14일 방북 사전안내교육을 받고 청와대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초청 오찬에 참석할 예정이다.

○…살아계신 줄 알았던 109세 노모의 사망소식을 접한 뒤 남은 조카들을 만나러 가는 장이윤씨(71·부산 중구 영주1동)는 “어머니가 살아계시다고 했다가 며칠만에 또 돌아가셨다고 보도하는 언론 때문에 정신이 왔다갔다할 지경”이라며 “더 이상 보도내용을 믿지 않고 평양에 가서 살아계신 어머니를 꼭 내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장씨는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고 억지로 잠을 청하기 위해 밤마다 술을 마시는데도 건강에 이상이 없는 것은 기적”이라며 “오늘밤에도 잠을 못 이룰 것 같아 맥주라도 혼자 마시며 마음을 안정시켜야겠다”고 한숨.

장씨는 호텔로 들어서던 박재규 통일부장관이 “그나마 조카라도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며 인사를 건네자 장관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엄수원(75)·수찬(73)씨 형제는 모두 신청서를 냈으나 동생 수찬씨만 방북단에 포함된 경우.

배웅나온 형 수원씨가 북에 있는 아내에게 가슴속 깊이 묻어둔 그리움을 가득 채운 편지를 대신 전해달라며 동생 수찬씨에게 건네 보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방북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민 갈 때나 사용할 만한 대형 여행가방을 소지해 눈길. 선물은 금반지 시계 등 고가품 이외에도 양말 스타킹 겨울코트 등 의류 일체, 1000달러 이상의 미화를 소지하는 경우가 대부분.

또 고향을 찾아가는 이들은 옷차림에도 무척 신경을 쓴 모습. 남동생 2명을 만나러 가는 이근하씨(71·경기 시흥시 신천동)는 이번 방북을 계기로 자식들이 마련해준 회색 줄무늬 양복을 입고 나와 “그래도 50년만의 고향 방문인데 옷차림이 말쑥해야지…”라고 말했다.

또 북에 두고온 부인과 자녀를 만나러 가는 이환일씨(82·경기 안산시 선부3동)는 눈부시게 하얀 모시 적삼을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아직도 생생한 북한 가족들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기대에 부푼 실향민들은 간밤에 잠을 설쳤어도 전혀 피곤하지 않은 기색.

이환일씨(82)는 “북에 있는 마누라가 고생을 많이 한 게 기억에 생생하다”며 눈물을 글썽. 이몽섭씨(75)는 “마누라가 유난히 코가 빨갰는데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다”며 들뜬 모습.

○…방북 일정에 관한 교육을 받기 위해 이날 오후 5시 호텔 2층 카멜리아룸에 모인 남측 방문자들은 행여 중요한 사항을 놓칠세라 같은 질문을 몇 번씩 되풀이하는 등 교육에 열중.

한 방북자가 “우리는 말해줘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종이에 적어달라”고 말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는데 배웅 나온 가족들도 18일 공항 마중을 위해 도착시간과 장소를 확인하느라 분주한 모습.

<서정보·이훈·김승진·이정은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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