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0년 6월 22일 19시 3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발단은 ‘김위원장이 주한미군의 역할에 공감했다’는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의 19일 국회 보고. 청와대측의 보안 요청으로 17일 여야 영수회담에서 이 사실을 전해듣고도 입을 다물고 있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측은 다음날 “우리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하더니 정부가 나서서 공개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공교롭게도 마침 ‘김위원장이 노동당규약 개정 방침을 밝혔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까지 겹쳐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청와대와 민주당의 ‘가벼운 입’을 꼬집고 영수회담 대화 중 청와대측이 비공개로 해달라고 요청한 다른 부분들까지도 알려줬다.
청와대가 발끈할 수밖에. 청와대측은 이총재가 밝히지 않기로 약속한 영수회담 내용까지 공개해 신의를 깼다고 비난했다. 민주당 정동영(鄭東泳)전대변인도 21일 “이총재가 비신사적 행동을 했다. 국가기밀을 유출한 야당 총재는 이총재뿐이다”며 공격했다.
사태가 이런 식으로 전개되자 한나라당측도 흥분했다. 이총재는 이날 긴급 당 3역 회의를 갖고 “민주당측의 공식 사과가 없으면 국정 운영 협조를 재고하겠다”고 밝혔다. 당직자들도 밤늦게까지 민주당 당직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이총재의 불편한 심기를 전하고 거칠게 항의했다.
권대변인은 22일에도 “김정일을 예의 바른 지도자로 보는 김대통령의 눈에 야당 총재는 분별 없는 인물로 보이나 보다”며 ‘막말성’ 논평을 냈다.
청와대와 민주당측은 한나라당의 거친 공세에 잘못 대응했다가는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주는 격’이 될까봐 이날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물론 한나라당도 국회 상임위 거부 등 극한투쟁까지 몰아갈 기세는 아니다. 정창화(鄭昌和)원내총무는 “여당의 분별 없는 발언으로 모처럼 상생(相生)의 분위기가 위협받게 됐지만 이총재는 차기 대선을 향해 큰 보폭의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