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앞으로도 대통령 5년단임제가 계속된다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5년제 대통령 중에서는 임기가 가장 긴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당선 직후부터 사실상 대통령직을 수행, 임기가 68일은 더 늘어났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임기연장론’은 김대통령에게 결코 행운은 아니었다. 당선에서 취임까지의 68일은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고통과 위기의 연속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편입이라는 초유의 국난속에서 김대통령은 파탄직전의 국가경제를 구해내기 위한 몸부림을 계속해야 했다.
국가위기상황에 대한 처방으로 ‘고통분담’과 ‘개혁’이라는 화두를 제시한 김대통령은 당선직후부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동시다발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가장 시급했던 국가부도사태를 막기 위해 김대통령은 당선직후 바로 ‘외환위기와의 전쟁’에 들어갔다. 당선 첫날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일본총리와 전화통화를 통해 긴급지원을 요청하는 ‘SOS’를 타전했다. 이어 데이비드 립튼 미재무차관, 휴버트 나이스 IMF대표단장과 면담, 지난해 12월25일 1백억달러에 이르는 G7국가의 긴급지원자금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미셸 캉드쉬 IMF총재, 제임스 울픈슨 세계은행(IBRD)총재는 물론 국제금융계의 큰 손인 조지 소로스 미퀀텀 펀드회장, 알 왈리드 사우디왕자, 샌퍼드 웨일 미 트래블러스그룹회장, 언론황제 루퍼트 머독 등은 김대통령의 주요 ‘고객’이었다.
이와 함께 안으로는 정부 재계 노동계에 대한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개혁작업에 들어갔다.
정부개혁을 위한 정부조직개편심의위를 출범시켰고 재계개혁은 비상경제대책위원회에 맡겼다. 또 노사정대타협 도출을 위해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었다.
이어 노동계의 고용조정(정리해고)이라는 ‘뜨거운 감자’에 손을 댔다. 노사정위원회에 동참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계를 설득, 노사정대타협을 이끌어냈다. 1월18일에는 TV를 통해 ‘국민과의 대화’마당을 마련, 국난극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얘기하고 국민들이 궁금한 점을 질문하게 함으로써 직접민주주의와 참여정치의 시대를 열었다.
〈윤영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