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회견 전문가좌담]『北의 망상 생생한 증언 충격』

  • 입력 1997년 7월 11일 20시 59분


《전북한노동당 비서 黃長燁(황장엽)씨가 10일 한국망명 후 처음 가진 기자회견에서 『꼭 한번은 전쟁을 한다는 것이 북한의 확고부동한 원칙』이라고 경고함으로써 우리의 흐트러진 경계심을 일깨워 주었다. 황씨의 회견이 갖는 의미와 북한의 전쟁준비 동향, 金正日(김정일)체제의 장래 등에 대한 북한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최평길〓먼저 황씨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들을 평가해 보지요. 강인덕〓북한을 오랫동안 주시해 온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황씨의 발언내용은 대체로 예상된 것으로 새로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확신을 심어 줬다는 점에서 황씨의 발언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전쟁 가능성과 김정일의 교조주의적 사고를 확인해 준 것은 중요한 대목입니다. 최〓김정일의 교조주의적 사고경향은 대남정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김정일이 급진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독선적인 성격의 소유자여서 대단히 위험하다는 판단입니다. 정책결정과정이 돌발적인데다 정세를 오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종석〓황씨 회견에 새 내용과 정보가 없었다는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심지도부 인사가 북한의 전쟁도발 가능성을 경고했다는 점에서 회견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함께 황씨 회견이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북한이 남북관계의 문을 걸어닫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단기적으로는 파장이 있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한편 대통령선거가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서 「황장엽리스트」문제가 다시 불거져 국내 분위기가 공안정국으로 가는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황씨 회견의 의미를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북한을 대표하는 사상가인 황씨의 사상전환은 북한공산주의 이념의 종말을 알린 사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남한이 잘산다는 것을 북한에서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에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세번째로 북한의 지도계층, 특히 국제관계에 밝은 사람은 김정일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 점입니다. 강〓황씨 회견을 북한의 대남정책과 관련해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의 남조선혁명에 관한 규정이 바뀌고 있습니다. 김일성시대의 그것은 반미 민족해방투쟁인 동시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의 날카로운 계급투쟁이었습니다. 이같은 기본노선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세변화에 따른 전술적 변화는 대단히 많았습니다. 최〓황씨는 북한이 전쟁을 도발할 수 있는 시기로 남한내부에 혼란이 조성되고 미국의 군사력이 여타 전쟁지역에 쏠릴 때라고 밝혔습니다. 강〓북한의 대대적 전쟁준비와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문제는 다른 문제입니다. 북한은 휴전선 부근에 막강한 화력을 배치하고 있지만 이는 「남한의 군사적 인질화」를 꾀하면서 대미(對美)교섭을 전개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최〓전쟁도발 문제는 김정일 측근들의 자세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김정일 주위에 반대세력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김정일 유일체제하에서의 권력핵심은 김정일측근과 같은 의미입니다. 현재 외형상 권력의 전면에 포진하고 있는 인물들은 혁명 1세대나 1.5세대들이지만 실권은 2세대들에게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혁명 2세대의 특징은 과거 김일성측근들보다 전문성을 갖추고 있고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김정일 반대세력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강〓북한 인민군 장성은 1천3백명에 이릅니다. 이중 김정일 등장이후 4차례에 걸쳐 진급시킨 장성은 9백명 가량이나 됩니다. 차수와 대장급은 혁명 1.5세대지만 그 밑은 2세대라 볼 수 있습니다. 이〓김일성의 만 3년상이 끝났으므로 김정일체제의 권력구조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강〓현재 김정일체제의 4대 핵심세력은 김일성가계와 항일빨치산 원로 및 그 아들딸, 만경대출신 테크노크라트, 김정일 3대혁명소조 출신 등입니다. 이들 가운데 원로들은 「명예퇴직」하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김정일 자신은 중국의 鄧小平(등소평)식으로 권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등소평처럼 국가주석이나 총비서자리에 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책임은 안지고 명령만 내리는 것이죠. 이 경우 김정일이 신뢰하는 정도에 따라 개별적인 지시와 명령이 내려가는 방식으로 정책이 결정, 집행돼 합리성이 결여될 공산이 큽니다. 최〓김정일이 혁명 1세대는 물론이고 1.5세대까지를 벅차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황씨도 그런 상황에서 망명을 택한게 아닌가 합니다. 이〓김정일시대로 넘어오면서 혁명 1세대나 혁명 1.5세대가 맡고 있는 부장(장관급)은 형식적 자리이고 실제권력은 혁명 2세대들로 채워진 부부장(차관급)들이 쥐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의 원로에 대한 벅찬 감정에도 불구하고 전면적인 숙청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빈자리를 새 사람으로 채우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해 갈 것입니다. 강〓김정일의 등장은 새 수령의 등장, 즉 「역사의 전환」이기 때문에 새 그릇을 만들어 내려 할 것입니다. 당중앙위나 당대표자회의에서도 권력을 개편할 수 있으나 완전히 다른 틀을 만들기 위해 당대회를 열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등소평이 했던 것처럼 당고문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원로들을 몰아넣을 방식으로 권력구조를 개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강〓휴전선 이북에서 평성이남 사이에 배치된 전력에 의한 기습 선제공격 전략은 매우 위협적입니다. 그럴 경우 우리 수도권은 엄청난 피해를 모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같은 1차공격은 막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차공격에 대한 반격을 통해 2차공격을 막을 수 있느냐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북의 미사일을 감지해 대응하는데 드는 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최〓황씨가 말한 「6분내 초토화」 등 북한 군사전략은 6.25때와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황씨가 대한민국의 방어태세를 미리 봤으면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실례로 최근 러시아의 국방군사담당 대통령보좌역을 만나보니 러시아가 북한을 장악하기 위해 북한군 장성에게 군사분계선에 배치된 남북한 군사력 배치도를 담은 인공위성 사진을 보여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직선거리 50m에서 찍은 것처럼 정확한 이 위성사진은 북한군부가 『실제로 전쟁을 하면 함께 죽는다』는 「억제효과」를 준다고 합니다. 이〓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물론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황씨가 『전쟁밖에 없다』고 말한 것은 지나친 점이 있습니다. 주변상황을 살펴보면 더 그렇습니다. 90년대 이후 북한의 「결정적」 지원세력인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도 북한이 일으킨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강〓황씨도 92년에 김정일이 전쟁을 생각했는데 김일성이 막았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일의 인식에 반대하는 군부내 엘리트의 정상적 사고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최〓잠시 화제를 바꿔서 황씨에 이어 제2, 3의 황씨 수준의 망명자가 나오지 않을까요. 결국 이는 북한 상층부 동요의 첫 신호탄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이〓황씨가 노동당 비서라는 고위층에 있었기 때문에 북한내 지식인 계층에 상당한 동요를 주겠지만 비지식인 계층의 동요는 덜 할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황씨가 북한내에서 차지한 역할이 독특하기 때문입니다. 황씨가 80년 노동당 6차대회때 사상담당 비서가 되면서 선전선동 부서를 사실상 총괄해 왔는데 그 임무는 해외동포나 학자들을 상대로 주체사상에 대해 개인숭배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백명을 만나면서 황씨가 설명한 주체사상은 평화와 인본주의를 강조한 것으로 개인숭배로 이어진 주체사상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황씨도 사상에 대한 회의를 느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황씨가 맡은 역할이 특수한 측면이 있었으므로 황씨의 망명이 다른 사람의 망명으로 직접 연결되기에는 시간이 좀더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북한 체제내에서 권력의 울타리에 있는 사람들중 상당수가 체제에 불만을 갖고 있겠지만 집단화하기는 어렵습니다. 최〓앞으로 예상되는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전망도 같이 언급해 보죠. 이〓북한의 개방은 기본적으로 김일성의 유훈(遺訓)입니다. 개방은 할 것이지만 개방속도 때문에 내부 갈등을 빚을 것으로 봅니다. 강〓자연발생적인 개혁이 체제개혁으로 나간다면 김정일체제는 무너질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김정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절대복종의 수령적 인간을 만드는 인간개조 사업입니다. 최〓개방문제와 함께 북한이 4자회담을 비롯한 대중 대미관계에 대해 어떤 노선을 취할까요. 강〓개혁개방으로 나갈 경우 북한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중요합니다. 체제개혁없이 외부로부터 많이 받아낼 수 있는 길은 4자회담을 통해 대북한경제 제재가 풀리면 북한의 경제가 나아질 것으로 봅니다.4자회담에서 우리가 전개할 외교는 복잡해집니다. 4개국이 각기 쌍무적 외교를 전개해서 조정해야하는 복잡한 문제가 나올 것입니다. 북은 이걸 생각해서 전략적 이해관계를 이용해 분열 각개격파에 나설 것으로 봅니다. 최〓화제를 바꿔 올해 예상되는 총비서 취임에서 김정일이 내걸 비전도 관심거리입니다. 황씨의 발언으로 볼때 김정일의 현재 위치에서 북한은 당장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같은 개혁없이 현상유지로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강〓북한이 김일성 3주기 행사를 마치고 이번에 주체연호를 제정한데서 김정일 노선의 미래를 알 수 있지요. 정세변화에 따라 남포 원산 등 지역적으로 개방정책을 도입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김일성의 혁명노선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주체연호 사용은 알고보면 김일성의 후광을 이용해서 김정일시대를 이어가려는 복합적 의미를 안고 있습니다. 결국 김정일이 공식적인 권력승계는 안했지만 김정일시대의 전략적 기조는 김일성시대를 답습할 것이 확실합니다. 최〓군대가 국가종합관리자로 등장하는 것은 한계성도 있을 겁니다. 군부의 부상은 기존 테크노크라트와의 관계에 틈을 주고 체제유지 약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한편 황씨의 회견으로 볼 때 향후 정부의 포괄적인 대북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하지 않을까요. 강〓대북정책의 전략적 목표는 전쟁억제와 함께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는데 도움이 되느냐 안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美日(미일)의 북한접근을 막아왔는데 이젠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전략목표 아래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면 남북간 교류가 활성화되고 이는 곧바로 통일의 첫단계가 될 것입니다. 두번째는 통일과 관련, 4자회담이 「한반도평화 문제의 국제화」라는 점에서 자칫 잘못하면 통일문제가 국제화로 나갈 우려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도 북측이 빨리 개혁개방으로 가서 통일문제를 민족내부의 문제로 유지해야 합니다. 평화문제와 개혁개방 문제는 필연적으로 통일문제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연계해 문제를 해결해야합니다. ▼ 참석자 ▼ 康仁德(극동문제연구소장) 李鍾奭(세종연구소 연구위원) 崔平吉(연세대 행정학교수)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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