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망명]「北 변절선언」배경

  • 입력 1997년 2월 18일 08시 56분


[김기만 기자] 黃長燁(황장엽)북한노동당비서 망명요청사건에 대한 북한의 강경한 입장이 크게 누그러져 그의 망명을 「불가피한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듯한 태도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17일 북한외교부대변인이 중앙통신과의 회견에서 『황이 망명을 추구했다면 그것은 변절을 의미하므로 변절자는 갈테면 가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물론 그 앞에 『황이 납치됐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참을 수 없으며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종래의 기본입장을 강조한 뒤 나온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는 분명히 「망명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첫 시사이다. 북한은 지난 12일 황의 망명사건이 알려진 뒤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적에 의해 납치된 것이다. 「피의 보복」을 하겠다』는 첫 반응을 필두로 황을 탈환해 북한으로 데려가겠다는 결의를 여러차례 나타냈었다. 북한은 특히 북경에 상당수의 특수요원을 보내 위력을 과시하는가 하면 金正日(김정일) 친서를 휴대한 특별대표단을 파견해 중국설득에 나서는 등 황의 한국행을 총력으로 막을 태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16일 중앙방송을 통해 황을 「비겁한 자」로 처음 간접비판한데 이어 17일 예상보다 빨리 황의 망명을 인정하는 「현실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무엇보다 황의 망명의사가 확고하다는 것을 알게 된 듯하다. 중국외교부 唐家璇(당가선)부부장의 황비서 면담이나 미국 중앙정보부(CIA)관계자와의 면담, 柳宗夏(유종하)―錢其琛(전기침)한중외무장관회담내용 등을 통해 북한은 황의 망명의사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은 권력핵심부내의 동요를 막고 사건을 조기 일단락해 체제정비를 할 필요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특히 『5∼7명의 간부가 뒤따라 망명할 가능성이 있다』는 황의 발언에 북한은 큰 심리적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또 현 시점에서 황의 망명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식량난해결, 미국 일본과의 관계개선, 경제제재완화, 남북경협 및 경수로지원 등 북한에 시급한 일들이 한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현실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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