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5.18 3차공판 스케치

  • 입력 1996년 10월 21일 20시 58분


「河宗大·金泓中기자」 ▼…李熺性 周永福피고인의 변호인인 李鎭江변호사는 21일 80년 당시 자위권 보유 천명에 대한 담화문 초안을 작성했던 朴永祿전계엄사보도처장으로부터 『자위권보유 천명은 당초 문안에 없었으나 외부 요청에 의해 삽입됐다』는 답변을 받아내고 매우 흡족해하는 표정. 이날 오전 재판에 앞서 『오늘 뭔가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것』 이라며 취재기자들의 관심을 유발했던 李변호사는 朴씨가 자신의 의도대로 술술 답 변해주자 『이로써 李, 周피고인의 내란목적살인혐의는 벗겨진 것 아니냐』며 2심에 서의 무죄를 자신. ▼…5.18부상자회 소속 회원들과 변호인들은 이날 오전 재판이 끝나자마자 몸싸 움 일보직전까지 가는 등 한동안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 이날 소동은 부상자회 소속의 40대 남자회원이 『金泳三대통령이 이미 5.18광주 민주화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는데 변호인측이 공판에서 계속 「광주사태 」라고 부르느냐』며 항의하자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해오던 변호인들이 『왜들 이래 』라고 맞받아치며 고성이 오갔던 것. 이에 부상자회 소속 회원들이 『뭐가 어째, 야 이 나쁜 놈들아』라며 소리를 지르 고 변호인들에게 달려들었으나 법정 경위들이 가로막아 물리적인 충돌은 겨우 모면. ▼…이날 첫 증인으로 나온 羅東源전계엄사 참모장은 검찰과 변호인측의 신문에 대해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라며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해 빈축. 羅씨는 이날 『80년 5월21일 새벽4시반 회의에서 자위권발동에 대한 논의가 있었 지요』라는 질문에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고 애매하게 답변. 이어 이미 1심 재판부가 인정한 『21일 오후 국방부회의에서 자위권보유사실을 천 명키로 결정됐지요』라는 질문에도 기억을 더듬을 여유도 갖지 않은 채 곧바로 『기 억이 나지 않는다』고 무성의하게 대답. 羅씨의 이같은 태도에 재판장인 權誠서울고법부장판사는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있지만 증인 답변을 들어보니 성실하게 답변하는 것 같지는 않다』며 일침. ▼…이날 공판개정에 앞서 오전 9시경 서울고법 417호 법정앞 2층 검색대 주변에 는 5.18부상자회 회원 10여명이 대자보 2개를 들고 항의시위를 벌여 눈길. 이들은 「全斗煥 盧泰愚씨는 지금이라도 광주시민과 온 국민앞에 사죄하라」는 내 용의 대자보를 들고 검색대를 통과하려다 법원직원들이 저지하자 거칠게 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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