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섭게 맑은 날, ‘향기로운 연꽃’ 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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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서 녹원 스님 다비식
“종단 혼란기 통합의 가치 일깨우고 법령 정비로 불교중흥 기틀 만들어”
5000여명 참석 마지막길 배웅

제24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녹원 스님의 영결식이 27일 경북 김천시 직지사에서 조계종 최고 의례인종단장으로봉행됐다.영결식직후연화대에서다비식이거행됐다. 김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제24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녹원 스님의 영결식이 27일 경북 김천시 직지사에서 조계종 최고 의례인종단장으로봉행됐다.영결식직후연화대에서다비식이거행됐다. 김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해가 중천에 떴건만 매서운 한기는 멈출 줄 몰랐다. 하지만 불전을 감도는 향내는 ‘나무아미타불’을 타고 갈수록 진해졌다. 붉고 푸른 지화(紙花)도 극락왕생을 축원하며 향기를 머금은 걸까. 23일 원적(세수 90세, 법랍 77세)한 직지사 조실 녹원(綠園) 스님이 떠나는 날은 시리도록 맑았다.

27일 오전 경북 김천시 직지사에서 열린 스님의 영결식은 새벽부터 사부대중 5000여 명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장례는 제24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1984∼86년)을 지낸 스님을 위해 조계종 최고 의례인 종단장으로 봉행됐다. 조계종이 종단장을 치르는 것은 2014년 해인사에서 열렸던 조계종 전 종정 법전 스님의 종단장 이래 3년 만이다.

장의위원장을 맡은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영결사에서 “녹원 대종사는 부처의 종자인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이 불사이니 중생을 위한 일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하셨다”며 “조계종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가는 곳마다 연꽃이 만개하는 맑고 향기로운 일생이셨다”라고 추모했다. 원로회의 의장인 세민 스님도 “종단이 혼란에 빠졌을 때 총무원장을 맡아 난제를 해결하고 통합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했으며, 종회의장으로 법령을 정비해 불교 중흥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행자 시절 녹원 스님을 모셨던 교구본사주지협의회 회장인 호성 스님은 옛 추억을 떠올렸다. 경북 의성군 고운사 주지인 스님은 “38년 전 공양을 지어 올릴 때마다 ‘참으로 맛있다’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세간, 출세간을 구분치 않고 한없는 자비로 세상을 대하고 거리낌이 없었던 큰스님이 가시는 길에 이렇게 마지막 공양을 올리게 돼 슬프고도 슬프다”고 했다.

2시간 남짓 진행된 영결식이 끝난 직후엔 식장에서 산길로 700m 정도 떨어진 연화대에서 다비식이 거행됐다. 오색으로 펼쳐진 수백 기의 만장(輓章)으로 가득 찬 길을 따라 옮겨진 녹원 스님의 법구는 1000여 명이 읊는 경소리와 함께 불이 붙여졌다. 이날 다비식은 2006년 최규하, 2009년 노무현,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에서 염을 했던 ‘연화회’에서 맡았다.

이날 영결식에는 청와대 불자회장을 맡고 있는 하승창 대통령사회혁신수석비서관, 이철우 의원, 김관용 경북도지사, 박보생 김천시장, 김갑수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장 등 정관계 인사도 다수 참여했다. 녹원 스님의 유발상자(속가 제자)이자 국회 정각회장인 주호영 의원은 줄곧 빈소를 지켰다. 천태종 총무원장인 춘광 스님과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 태고종 총무원장 편백운 스님도 참석해 분향했다. 다비식을 마친 녹원 대종사의 초재는 29일, 7재는 내년 2월 9일 직지사에서 열린다.

김천=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직지사#녹원 스님#녹원 스님 다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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