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취화선에 반해 이란 강사직 박차고 왔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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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학생회장 베바하니 씨

세종대 최초의 외국인 ‘과 학생회장’인 수레나 베바하니 씨(만화애니메이션학과 4학년)가 서울 광진구 세종대 교정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세종대 제공
세종대 최초의 외국인 ‘과 학생회장’인 수레나 베바하니 씨(만화애니메이션학과 4학년)가 서울 광진구 세종대 교정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세종대 제공
‘쫓아오던 햇빛인데/지금 교회당 꼭대기/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가장 좋아하는 시라며 또렷한 발음으로 윤동주의 ‘십자가’를 읊는 외국인. 이란 국적의 수레나 베바하니 씨(30)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4학년인 그는 지난해 말 과 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세종대 최초의 외국인 과 학생회장이다.

그는 이란의 명문대에서 섬유공학 석사학위를 딴 후 대학 강사 자리를 제안받는 등 안정된 미래가 보장돼 있었다. 그러나 2010년 돌연 유학을 결심했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거울 속 내 얼굴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어요.”

어려서부터 애니메이션을 즐겨 봤던 그는 미술이나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기에 이와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영화 ‘취화선’은 수많은 나라 중에서 한국을 선택하는 계기가 됐다.

“왜 그 고생을 하려고 하느냐”던 부모의 만류도 그의 의지를 꺾진 못했다. 결국 베바하니 씨는 2010년 한국 땅을 밟았다. 영화 속에 비친 한국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설렘도 잠시, 음식과 언어는 낯설기만 했다. 특히 매운 음식은 고통스러웠다. 그는 “고추장이 잔뜩 들어간 비빔밥을 아무 생각 없이 먹고 혼쭐이 난 뒤로 석 달간은 한식당에 가면 떡국만 먹었다”며 계면쩍게 웃었다.

하지만 그는 윤동주의 시와 판소리에 심취했고, 한국 특유의 ‘한(恨)’이라는 정서에 매료됐다. 4년 전 어학당을 다니며 처음 접한 윤동주의 ‘십자가’는 줄줄 외울 정도다.

한국어를 익힌 베바하니 씨는 2013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했다. 그동안 꿈꿔온 미술과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교수님과 동기, 선후배들은 이런 그를 매우 친근하게 대했다.

그는 따뜻한 환대에 보답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다 과 학생회장 선거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선거운동 기간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협이 불거졌지만 “이란도 IS에 반대해 싸우는 나라”라고 말해 오해를 풀었다. 그리고 한국인 학생과의 경선에서 당당히 이겨 340명을 이끄는 과 학생회장이 됐다.

올해 그의 포부는 ‘외국인 학생회장’이 아닌 그냥 ‘학생회장’이 되는 것, 함께 소통하며 공감하는 학생회장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입사라는 꿈도 있다.

신경 쓸 게 많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지만 아침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볼 때면 전보다 행복해 보인단다. “윤동주는 자신이 부끄럽게 살고 있진 않은지 늘 돌아봤던 것 같아요. 저도 거울을 보며 늘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세종대#학생회장#외국인 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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