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 발표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통일 이야기를 했다. ‘동서통합이 없으면 남북통일도 없다’고 강조한 게 대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
25일 자유총연맹 회장으로 선출된 김경재 전 대통령홍보특보(74·사진)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그는 이날 투표에서 대의원 368명이 투표한 가운데 205표를 얻어 허준영 현 회장(163표)을 누르고 당선됐다.
그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로 불린다. 1942년 전남 여수 출신으로 순천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71년 김대중 신민당 대선후보 선전기획위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유신 체제하에서 재야 운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15년간 사실상 망명 생활을 하며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유신 체제의 민낯을 고발한 ‘김형욱 회고록’을 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했다. 1987년 6·29선언 후 귀국해 다시 DJ 캠프에 합류했고 15, 16대 야당(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순천)을 지냈다. 김 회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학 시절부터 DJ를 알았고 집에서 같이 살면서 ‘입주 특보’ 역할을 했다”며 “DJ의 미국 망명 시절까지도 보좌를 했기에 술버릇, 잠버릇부터 모르는 게 없다”고 말했다. 1997년 대선 당시에는 새정치국민회의 홍보위원장으로 DJ의 당선에 기여했다.
다만 DJ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고 한다. 김 회장은 “1999년 DJ의 지시로 평양을 다녀온 뒤 ‘북한을 무조건 풀어주면 안 된다. 노벨 평화상 받으려고 서두르시느냐’고 했더니 크게 화를 내시더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김 회장은 2010년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전남도지사 선거, 2011년 4월에는 무소속으로 전남 순천 재·보선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이후 집필 활동을 주로 하며 지냈는데 2012년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에게서 ‘도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사과할 부분을 사과하고, 평화적 통일을 추구하겠다면 돕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이더라”고 회고했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대통령홍보특보를 맡아 박 대통령에게 대국민 소통을 늘리는 방안은 물론이고 중국, 북한 관련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을 돕게 된 이유를 묻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 대통령과 DJ의 정치적 아들인 내가 힘을 합쳐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합하는 ‘산민(産民) 통합’을 이루고 싶었다”고 했다.
김 회장은 3년의 임기 동안 통일 운동에 매진할 계획이다. 그는 “폭압적 통치를 하는 김정은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자유총연맹이 통일의 선봉대로 나서겠다는 각오로 박 대통령의 통일 정책을 보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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