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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어머니 품 같은 넉넉한 산… 마지막 혼 불사를 힘을 얻다

입력 2015-04-30 03:00업데이트 2019-11-2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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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와 함께하는 ‘이야기가 있는 숲 길’]
소설가 박범신, 대전 서구 해발 186m 장태산 트레킹
장태산의 메타세쿼이아 숲길 앞에 선 소설가 박범신. 영원한 ‘청년 작가’로 불리는 그이지만 그의 내면은 청년의 감수성을 넘어 깊이와 원숙함을 치열하게 향하고있다. 초록의 싱싱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영혼의 크기를 키워 온 그의 작품 세계는 큰 숲과 같다. 그는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 가식적이지 않은 산의 덕을 예찬했다. 대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한국 나이로 올해 일흔이 된 소설가 박범신(69)의 머리카락은 자주 흐트러져 있다. 모자를 즐겨 쓰는 데다 흰 머리를 자주 건드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르마는 언제나 분명하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지만 사고의 중심이 뚜렷한 그를 대변하는 듯하다. 그는 스스로 뜨거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열정을 절제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평소 뜨거운 쌀밥을 숟가락으로 떠 찬물이 담긴 컵에 담가 식힌 뒤에 넘긴다. 뜨거움을 밀어내 체온의 균형을 맞추려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그가 21일 장태산을 찾았다. 대전 서구 장안동에 있는 장태산의 해발 높이는 186m이다. 40년이 넘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울창하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높이 30여 m까지 자란다. 산길 양쪽으로 높게 뻗어 있는 나무들을 쳐다보면 저절로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장태산 숲길 진입로에서 그는 “산은 큰 덕(德)이자 법(法)”이라고 했다. 》

○ 인기 작가? 대중 작가?… 난 그냥 작가

5km 산길의 초입에는 봄기운을 맞고 떨어진 벚꽃이 흙 위에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다. 그 길을 걸으니 마치 카펫을 밟고 있는 인기 스타라도 된 듯하다. 1973년 ‘여름의 잔해’로 등단한 그에게는 ‘인기 작가’, ‘대중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는 어두운 삶, 비정한 현실을 감성적으로 묘사했다. 사회 속의 ‘물질만능주의’와 ‘속물근성’을 사실적으로 보여줬다. 그의 많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은교’ ‘미지의 흰 새’ ‘밀월’ ‘물의 나라’ ‘불의 나라’ ‘밤에 내리는 비’ 등 10여 편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작가’ 앞에 붙는 다른 수식어가 싫다고 했다.

“내 이름 앞에 대중 작가, 인기 작가라는 관용어가 안 붙었으면 좋겠어요. 난 그냥 작가지.”

일흔 나이의 시인과 열일곱 소녀의 파격적인 사랑을 그린 ‘은교’는 여러모로 화제를 모았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겼다고 했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되지 못했다고 했다.

“은교는 저에게 양날의 검입니다. 은교 때문에 대중 작가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형성된 면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은교라는 작품 자체가 소설을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위험한 노인이 벌이는 불손한 연애 이야기쯤으로 치부돼요. 이미지로 작품을 예단한다는 건 무서운 오해를 낳습니다.”

그래서 최근 강우석 감독이 영화로 만들고 있는 ‘고산자’도 어떻게 비칠지 다소 걱정이 된다고 했다. 2009년 대산문학상 수상작인 ‘고산자’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생애를 그린 장편 소설이다. 역사서에 나오지 않는 부분은 박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웠다. 김정호라는 인물이 단순히 지도를 만든 사람으로 맥없이 비칠까 신경 쓰인다고 했다.

“김정호의 위대성이 잘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감독에게도 부탁을 했죠. 김정호는 완전한 경제 민주화를 꿈꾼 사람입니다. 자신이 만든 국토 정보를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 위대성을 영화에서 살려달라고 얘기했죠.”

장태산의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난 길. 나무 중간 높이로 난 이 길은 장태산의 명물이다. 대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젊은 감성이 죽지 않아 고민

장태산 숲길을 걷다 보면 능선 위에서 하늘과 인근 산맥의 장관이 한눈에 펼쳐지는 순간을 만난다. 형제바위가 있는 전망대가 있다. 정자 팔마정도 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용태울 저수지는 산들 사이에 비집고 자리 잡았다. 마치 부츠같이 생겼다. 그 부츠를 신고 지나온 삶을 거슬러 가고픈 충동이 생긴다.

그는 요즘 유난히 바쁘게 산다. 과거에 집필한 작품들을 많이 고치고 있다. 글 쓰는 것 이외에 강연 활동은 하지 않는다. “좋은 소설을 쓰고픈 욕망이 생겨 다른 일은 모두 접을 생각”이라고 했다.

70세는 그가 심리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때이기도 하다. 그는 “부모님이 모두 70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래서 내 나이 70이 되는 올해가 특별하다”고 했다.

“부모님보다 더 오래 세상을 살게 됐으니 불효는 아니겠죠. 올해는 일을 열심히 하고 내년부터는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70세가 되니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공자의 말씀)라고 했잖아요. 이제 마음대로 살아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겠죠? 70세 이후 나머지 인생은 축복을 받아 더 얻은 걸로 치고 살 겁니다.”

요즘 한 가지 마음에 밟히는 게 있다고 했다. 최근 ‘꽃잎보다 붉던’을 집필하면서 고통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78세 치매에 걸린 노인 이야기를 쓰는데 젊은 시절의 감수성이 나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래전인 청년 작가의 감성으로 노화와 죽음을 다룬다는 것이 거슬렸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늙은 감성이 발동되지 않아 불편하다고 했다. 그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산의 덕을 말했다.

“산은 정직하잖아. 보이는 그대로가 전부라고 말하잖아요.”

○ 물의 마음으로 살자

박 작가는 1980년대 초 동아일보에 소설 ‘불의 나라’를 연재했다. 시골에서 태어나 도덕적 자부심으로 뭉친 주인공은 서울로 올라와 소위 ‘가진 자’들을 통쾌하게 무너뜨린다. 권력이나 돈에 의해 처절하게 짓밟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 작품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가 말하는 ‘불’은 돈과 권력을 갖기 위한 정열과 전투력이다. 욕망과 직결돼 있다. 그는 “우리 역사는 지금도 끊임없이 불을 강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개발 이데올로기는 불의 역사라 할 수 있죠. 전투적으로 밀어붙여 성장을 이뤄냈죠. 여전히 불이 지배하고 있어요. 반면 물은 관용이고 여성성이에요. 요즘엔 시골에서도 이웃끼리 고소하고 그럽디다. 전적으로 물이 부족한 사회적 병폐 속에서 살고 있어요. 경제를 살리자고 전투 나팔을 불 게 아니라 물의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랑을 나누고 격려하는 것이 절실하죠.”

최근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뇌물 스캔들 역시 ‘불’이 가져온 씁쓸한 부작용이라고 했다. 작가는 스캔들에 연루된 관련자들이 ‘소설’을 운운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뇌물 수수 의혹을 받는 인사들이 스캔들을 폭로한 자에 대해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하잖아요. 착각하는 것 같은데 소설은 허구인 듯하면서 결국 진실을 관통하는 겁니다. 소설에 빗대면 안 되죠.”

불의 사회에서 가장 타격을 받은 건 가장들이라고 했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자신보다 어린 세대의 아버지들이 애처롭다고 했다. 그의 작품 ‘소금’에서 소금기가 다 날아간 아버지들은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그가 보기에 이제는 아름다움도 사라졌다.

“옛날의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돈을 벌면서 자기 자식을 책임지고 교육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죠. 지금은 돈만 벌어다 줄 뿐이죠. 자식이 아비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소비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결과죠. 예를 들어 아버지 월급이 200만 원인데도 5만 원짜리 운동화를 자식에게 사준다고 하면 자식이 말을 듣나요? 30만 원짜리를 사달라고 떼를 쓰죠. 현재 아버지들은 돈을 벌지만 자식에 대한 영향력이 없습니다.”

결국 ‘불’이 만들어낸 행복은 가식적이라는 것이다. 박 작가는 “사람이 예순이 넘으면 인생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야 한다. 부자는 아니지만 잘못 살아온 것이 아니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 스스로도 행복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고 했다. 최근 목공일을 배워 손녀들에게 눈높이 식탁을 만들어 주면서 눈물겨운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독자들과 스스럼없이 만나는 시간도 일상의 행복으로 자리 잡았다.

“예전에는 독자들이 나를 받들어주는 것으로만 알았죠. 이제는 독자들이 자유롭게 제 집을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놓습니다. 독자가 어른이든 아이든 내가 받들려고요. 독자들을 만나 문학적으로 토론해 봐야 남는 게 없더라고요. 대신 독자들이 한 번 더 웃을 수 있게 희생하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이고 행복이라고 봅니다.”

장태산 숲길 트레킹을 마친 뒤 그는 “산에서 부는 바람이 코와 비장을 거쳐 몸을 청소하고 나갔다”고 했다. 정신이 맑아졌는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왜 사람들은 산을 ‘러닝머신’으로만 활용하는지 모르겠어요. 하하.”

▼적절한 배낭 고르려면▼

상체 길이에 맞고 몸에 밀착돼야… 주말 근교 산행땐 30∼40L 적당


야외 활동을 할 때는 단순 수납용이 아니라 허리와 목 부상까지 막는 보호대 기능이 갖춰진 배낭이 필요하다. 배낭을 고를 때는 자신의 몸에 잘 밀착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다양한 제품을 착용해 본 후 구입하는 게 좋다. 키보다는 상체 길이에 잘 맞는지 확인하고 자신의 산행 패턴에 따라 배낭 크기를 결정해야 한다.

배낭 크기는 반나절이나 가벼운 당일 산행이라 해도 20L 이상 되어야 활용도가 높다. 겨울철 야영산행을 즐기는 베테랑 등산족이라면 75L 이상이 좋지만, 주말 근교 산행을 할 정도라면 30∼40L 배낭도 충분하다.

짐을 쌀 때는 배낭의 조임 장치를 모두 푼 상태에서 가벼운 소지품을 아래에, 무거운 짐을 위에 넣어야 한다. 특히 무거운 짐은 등 부위 가까이에 넣어야 배낭의 무게중심이 몸쪽으로 온다. 배낭 아래에는 소지품을 차곡차곡 넣어 빈틈이 없도록 한다. 산행 중 자주 꺼내 쓸 장비는 배낭 헤드에 넣는다. 밀착감이 뛰어난 배낭은 오랜 시간 걸어도 몸에 가해지는 부담을 작게 한다. 또 움직일 때도 제약이 덜해 가뿐한 봄 산행을 돕는다.

東亞日報와 밀레가 함께하는 열두 길 트레킹

대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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