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여성 은행지점장을 지낸 장도송 전 조흥은행 연수원장이 3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금융사박물관에서 주판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962년 봄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책임자(대리) 승진시험이 치러진 부산의 한 중학교. 수백 명의 남성 은행원 사이로 한 여성 행원이 고사장 문을 열고 들어섰다. 고사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치마 입고도 시험 보나?” 일부 짓궂은 남성 동료들이 놀렸지만 이 여성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결과는 합격.
공정한 경쟁에서는 남성들을 이겼지만 ‘보이지 않는 경쟁’에서는 이길 수 없었다. 은행 임원들은 그에게 승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여자에게 어떻게 책임자를 맡길 수 있냐”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본점 영업부 대리’ 명함을 가진 건 시험에 합격한 지 7년 후였다. 그토록 견고하던 금융권 유리천장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대리도 안 된다고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여성 은행장이 나오다니요. 감개무량합니다.”
지난해 말 금융권을 강타한 여성 임원 발탁 돌풍을 감격스럽게 지켜본 이가 있다. 대한민국 첫 여성 은행지점장인 장도송 전 조흥은행 연수원장(78). 3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신한금융사박물관에서 만난 장 전 원장은 기자를 보자 대뜸 가방부터 열었다. 여성 임원의 승진 소식이 실린 신문 스크랩을 한 뭉치 꺼내면서 “정말 기분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부산 동래여고를 졸업한 그는 1954년 조흥은행 부산지점 국제시장 예금취급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야근, 주말근무까지 자청할 정도로 일이 적성에 맞았다. 결혼하면 곧바로 사표를 던지는 여성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나만은 일로 승부를 보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경력은 끝없는 유리천장과의 싸움이었다. 은행권 첫 여성 대리, 첫 여성 과장이 됐고 1984년 조흥은행 청파동지점에서 첫 여성 지점장이 됐다. 주요 신문에 기사가 실릴 정도로 여성계를 흔든 대(大)사건이었다. 국내 기업 최고위직 여성이라는 이유로 세계전문직여성연맹(BPWI) 한국연맹 회장까지 맡았다.
그는 “독립운동 하듯이, 개척자 정신으로 직장생활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여은행원 결혼각서 폐지 운동을 꼽았다. 여성은 결혼을 하면 은행을 떠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은행이 바뀌면 일반 기업도 자연스럽게 변할 것이라고 믿었어요. 당시 여성계와 언론의 지원도 컸죠. 그때 뿌린 씨앗이 오늘날 좋은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합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그의 이력서에는 여전히 마침표가 없다. 1993년 은퇴 후 경기 남양주시 이주노동자센터에서 여성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고 있다. 승승장구하는 여성 후배들에게는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억지로 평등하게 해 달라는 것은 구걸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 스스로를 갈고닦아야죠. 한국 여성의 약진은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