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약점잡아 월급 안준 사장님, 유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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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온 유학생들, 판검사役 맡아… 실제 체험 소재로 모의 참여재판

외국인 유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12일 오전 서울 광진구 서울동부지법 15호 법정에서 모의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서울대와 한양대 소속 외국인 유학생들은 ‘해밍턴 편의점 아르바이트비 미지급 사건’ 에 대한 재판을 직접 체험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외국인 유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12일 오전 서울 광진구 서울동부지법 15호 법정에서 모의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서울대와 한양대 소속 외국인 유학생들은 ‘해밍턴 편의점 아르바이트비 미지급 사건’ 에 대한 재판을 직접 체험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억울합니다. 취업 허가도 받지 않았고 가게에 손해까지 입힌 유학생에게 임금을 줘야 합니까?”

12일 오전 11시 서울동부지법 15호 법정. 편의점 점주 역할을 맡은 중국 출신 유학생이 유창한 한국어로 이의를 제기했다. 잿빛 히잡을 두르고 판사석에 앉아 있던 다른 학생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이날 서울대와 한양대의 외국인 유학생 10여 명은 ‘해밍턴 편의점 아르바이트비 지급 사건’에 대한 모의 국민참여재판에서 직접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배심원 역할을 맡았다.

모의재판은 ‘해밍턴’이라는 가상의 유학생 사건으로 구성됐다. 호주 출신인 해밍턴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한국말이 서투르다는 이유로 법정 최저임금(시간당 4860원) 이하인 시간당 4000원만 받기로 점주와 합의했다. 하지만 해밍턴은 지시를 잘못 알아듣고 냉동고 스위치를 내려 아이스크림을 상하게 하는 등 손해를 입혔다. 점주는 해밍턴을 해고하면서 그가 외국인 취업 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임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해밍턴은 고용노동부에 점주를 신고했고 점주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형사 재판을 받게 됐다.

모의재판의 주요 쟁점은 △출입국관리법상 신고 및 허가 없이 불법 아르바이트를 한 외국인 유학생도 우리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가 △아르바이트생이 끼친 손해를 임금에서 빼도 되는가 △외국인 아르바이트생도 최저임금제를 적용받는가 등이었다.

배심원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취업 신고를 못한 해밍턴의 잘못이다”는 의견과 “외국인 유학생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취업 조건을 고지하지 않은 점주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애초에 최저 임금 이하를 지급하기로 계약한 것도 잘못이다” “한국말이 서투르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손해에는 점주의 책임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2시간 반가량 소요된 재판 끝에 재판부는 불법 아르바이트 학생도 근로기준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라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점주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이날 재판에 참여한 유학생들은 대부분 해밍턴과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해밍턴 역할을 맡은 아제르바이잔 출신 니핫 칼라일자이드 씨(21·한양대 컴퓨터공학부)는 실제로 아이스크림 업체에서 4개월 동안 최저 임금을 받기로 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기말고사 기간이 돼 그만두겠다고 하자 사장은 “불법 취업이니 임금을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칼라일자이드 씨는 “당황하고 억울했지만 해밍턴처럼 고소할 생각도 못했다”며 “많은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관련법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학생들은 모의재판을 의미 있는 경험으로 평가했다. 재판장 역할을 맡은 중국 출신 옌차오둥 씨(26·한양대 대학원 법학과)는 “중국에도 인민 배심원 제도가 있다. 중국 재판 절차를 개선하는 데 한국의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 강평을 맡은 최문수 동부지법 공보판사는 “유학생들의 판결이 실제 사건 판례와 유사하게 나와 인상적이었다”며 “외국인 유학생들이 국내 생활과 밀접한 사법절차를 제대로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모의재판#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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