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기봉이’ 엄마 없는 졸업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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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 나이에 철원 와수초교 마쳐 근면상-장학금 받고 중학교 진학
어머니는 지난해 여름 세상 떠나

“엄마, 나 졸업했어요….”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실제 주인공 엄기봉 씨(50)가 15일 강원 철원군 서면 와수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영예의 졸업장을 받은 이날 그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졸업을 가장 축하해 줘야 할 어머니가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 씨의 어머니 김동순 씨는 지난해 여름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 씨는 지적장애 아들을 평생 뒷바라지했고 아들은 어머니의 틀니를 해 주려고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가 그 사연이 알려져 영화로 만들어졌다.

충남 서산에 살던 엄 씨는 2006년 여동생이 있는 철원으로 이사한 뒤 2007년 와수초교에 입학했다. 그는 당시 “글을 몰라 무시당하며 살 순 없다”며 특수학급 배치 신청서를 제출했고 입학을 허락받았다. 엄 씨는 가정 사정으로 3학년 때 서산으로 전학 가서 어머니와 생활하다가 지난해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는 바람에 다시 와수초교로 옮겼다. 그는 현재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학교에서 ‘속 깊은 학생’으로 통했다. 엄 씨는 학생들이 떠들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면 말리는 맏형 역할을 했다. 자식뻘도 안 되는 급우들은 그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지난해 비가 많이 왔을 때는 학교가 걱정돼 일요일에도 학교를 찾았을 정도로 강한 애착을 보였다.

인근에서 5일장이 열릴 때면 도로에서 교통정리 자원봉사를 했고 올겨울 마을에서 열린 축제 때도 교통정리를 하거나 눈을 치우는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이 같은 성실함을 인정받아 졸업식에서 근면상과 장학금을 받았다. 사회복지사가 되는 꿈을 갖고 있는 그는 다음 달 김화중학교에 진학한다. 이날 교사들로부터 졸업 축하 인사를 받은 엄 씨는 “죽을 때까지 공부를 많이 하고 싶어요”라고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평소 일곱 살이나 많은 엄 씨를 ‘엄기봉 학생’이라고 부르던 담임교사 박종선 씨는 “어린 학생들과 학교생활을 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잘 참아내고 졸업해 내 일처럼 기쁘다”며 “중학교 생활도 무사히 마치고 사회복지사의 꿈을 꼭 이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훈 교장은 “지난해 어머니를 여의는 등 어려운 일을 겪었지만 무사히 졸업해 다행”이라며 “학습 능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성품이 좋고 남을 위해 행동하기를 좋아해 중학교 생활도 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철원=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기봉이#졸업#엄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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