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시각서 세계사 조망한 20세기 지성
작년까지 30권 넘게 집필… 필독서로 ‘죄와 벌’ 꼽기도
1일 별세한 영국의 저명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숨을 거둘 때까지 공산주의는 종언을 고했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의 불의에 여전히 비난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기 때문이다.”(자서전 ‘미완의 시대’에서) 사진 출처 텔레그래프유럽 근대사를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등 3부작 시리즈로 담아내며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라는 평가를 받아온 영국의 좌파 지성 에릭 홉스봄이 1일(현지 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BBC방송 등 영국 언론은 유족을 인용해 “폐렴을 앓던 고인이 1일 새벽 런던 왕립자유병원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딸 줄리아 씨는 “부친은 수년간 백혈병과 싸워 왔다”며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고 침대 곁에 항상 신문을 쌓아 뒀다”고 말했다.
홉스봄은 러시아 혁명이 발생한 1917년 이집트에서 유대계 영국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자랐다. 일찍 부모를 잃고 14세이던 1931년 독일 베를린으로 옮겨와 삼촌과 살면서 사회주의 학생단에 가입했다.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엔 영국 런던에 정착했고 1936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이런 유년 시절은 홉스봄이 20세기 공산주의의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까지 공산당원 자격을 유지하며 마르크스주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은 배경이 됐다. 홉스봄은 2002년 쓴 자서전 ‘미완의 시대’에서 이 시절에 대해 “개인으론 고달팠지만 역사가로서는 각별한 자산이었다”고 회상했다.
케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홉스봄은 1947년 런던대 버벡칼리지 사학과 강사로 출발해 1982년까지 이곳에서 사회경제사 교수를 지냈다. 이후 영국아카데미 및 미국아카데미 특별회원, 뉴욕 신사회연구원 교수 등을 지내며 왕성한 연구 활동을 했다.
그는 생전 30권 이상의 저서를 남겼다. 프랑스 혁명부터 러시아 혁명에 이르기까지 세계사 급변의 순간을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입각해 조망한 3부작 역사 시리즈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부터 1991년까지 20세기 서구 역사를 다룬 ‘극단의 시대’는 그의 최고 명저로 꼽힌다. 극단의 시대는 40개 언어로 번역돼 가장 폭넓게 읽힌 20세기의 역사서로 꼽힌다. 지난해 펴낸 마르크스주의 회고 에세이집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는 그의 마지막 저서가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홉스봄은 스스로를 19세기 역사가라고 칭했지만 다른 세기에 대한 그의 이해는 전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세계적”이라고 평가했다. BBC방송은 “홉스봄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로 존경받는 동시에 공산주의자로서의 관점을 바꾸지 않은 것으로 비판 받는다”고 전했다.
홉스봄은 지난주 손자들에게 “호기심을 가져라. 호기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이다”라고 조언하고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영국 시인 위스턴 휴 오든의 시를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했다고 딸 줄리아 씨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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