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의 뉴욕대 인근에서 신생 벤처기업 9개사가 공동 사무실을 쓰고 있는 ‘도그패치랩’.
대부분 백인 남성들인 이곳에서 유독 동양인 여성 한 명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6월 쇼핑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창업한 세라 페이지(반은경·28) 스내피트 공동대표가 주인공.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할 때 상위 5% 최우수 졸업생에게 주는 ‘피 베타 카파(Phi Beta Kappa)상’을 받기도 했던 그는 지난해 하버드 경영대학원(MBA)을 1학년만 다니고 휴학했다. 그는 “지금 뉴욕에 불고 있는 벤처 붐을 놓치기 싫었다. 선배와 공동 창업했는데 5년 내에 상장까지 하고 싶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상장으로 실리콘밸리 못지않게 벤처 열기가 뜨거운 뉴욕에서 ‘제2의 저커버그’를 꿈꾸는 한인 벤처기업인들의 활약상이 눈부시다. 스내피트의 사업모델은 앱 이용자들이 쇼핑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패션 아이템 사진과 감상평 등 쇼핑정보를 다른 이용자와 공유하는 것. 자사 제품이 판매가 되면 해당 업체는 스내피트에 수수료를 제공한다. 창업한 지 1년도 안 돼 월스트리트저널, 포브스, CNN 등 현지 언론의 조명을 받았고 페이스북과 그루폰의 투자로 유명한 벤처캐피털 액셀파트너로부터 15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한국계 이민 2세인 페이지 공동대표는 “남성과 기술기업이 주류인 벤처업계에서 패션을 주제로 한 틈새 분야에서 여성이 창업하자 주목받는 것 같다”며 “꼭 성공해 미국 내 한국계 창업기업에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뉴욕에서 눈길을 끌고 있는 예술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더 그라운드 소셜(The Ground Social)’도 한국인이 만든 것이다.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모펀드(PEF) 등 금융계에서 종사하고 있는 반주현 씨(34)가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윤용석씨와 함께 지난해 5월 '아티스틱큐브'를 창업하면서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 문화예술인들은 이 사이트에 자신의 작품을 올려 평가를 주고받는다. 호응을 얻은 작품들은 회사가 제작해 전 세계에 배포하는 잡지 ‘더 그라운(The Ground)’에도 실린다. 지난해 8월 나온 창간호(당시 제호는 버진)는 미 최대 서점체인 반스앤드노블에 비치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조카이기도 한 반 씨는 “코카콜라 등 기업들이 사이트에 광고를 하겠다고 하는데 예술인을 위한다는 사이트의 선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거절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직 매출이 높지 않지만 여타 비슷한 사업모델이 없어 성공 가능성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스내피트와 더 그라운드 소셜가 이제 막 발을 내디딘 신생 벤처라면 정세주 대표가 이끄는 눔(Noom)사는 중견 벤처다.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는 맨해튼 첼시에 위치한 눔사에 들어서면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프린스턴대 등 최고 명문대를 졸업한 엔지니어들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 열심인 정 대표를 만나게 된다. 유창한 영어로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를 보면 재미교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2005년 뉴욕 땅을 처음 밟았을 때만 해도 영어가 서툰 ‘동양의 이방인’이었다고 한다. 국내 음반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뉴욕을 찾았던 정 대표는 프린스턴대에 다녔던 사촌동생을 따라 이 대학 음식 동호회 ‘이팅클럽(Eating Club)’에 갔다가 역시 프린스턴대를 나와 당시 구글 수석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던 아르템 페타코프 씨를 만나 인생을 바꾼다.
당시 페타코프 씨는 정 대표에게 “헬스클럽이 마음에 안 들어 스마트폰으로 건강관리를 하는 회사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고, 정 대표는 곧바로 ‘함께 그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장문의 e메일을 보내 ‘오케이’ 답장을 받아냈다. 정 대표는 “영어도 못하고 사업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나를 왜 파트너로 정했는지 물었더니 ‘창업에 대한 열정을 봤다’고 하더라. 페타코프는 기술을, 난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눔사는 2008년 스마트폰 앱으로 운동 관리와 체중 조절 등을 할 수 있는 ‘카디오트레이너’(현재는 ‘눔다이어트코치’로 업그레이드)라는 앱을 내놓은 이후 안드로이드 건강관리 분야 앱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누적 다운로드만 해도 1350만 회에 이르며 최근에는 삼성 스마트TV 기본 프로그램으로까지 내장됐다. 아시아 시장 진출을 앞두고 실리콘밸리의 대규모 투자도 기다리고 있다. 정 대표는 “한인 벤처기업들과 자주 교류하고 만나면서 뉴욕에서 함께 성공신화를 만들어 갈 꿈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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