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부룬디 출신 마라토너 버징고씨 대한민국 국적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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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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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준 한국에 감동… 창원 김씨 시조 됐죠”

아프리카 부룬디 출신 마라토너 버징고 도나티엔 씨가 25일 정부과천청사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올해 일반 귀화 허가를 받은 국적 취득자들과 함께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법무부
아프리카 부룬디 출신 마라토너 버징고 도나티엔 씨가 25일 정부과천청사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올해 일반 귀화 허가를 받은 국적 취득자들과 함께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법무부
“앞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법과 질서를 준수하며 나라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할 것을 선서합니다.”

25일 오후 경기 과천시 별양동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는 귀화 허가를 받은 20명에 대한 국적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까만 피부의 버징고 도나티엔 씨(32)가 맨 앞에 섰다. 그는 대표로 선서를 한 뒤 환하게 웃으며 힘차게 태극기를 흔들었다. 버징고 씨는 올해 3월 최초로 귀화한 아브라함(가명·38) 씨에 이어 난민인정자로서는 2호 귀화자다.

▶본보 3월 20일자 A12면 참조
난민 최초로 한국국적 취득…에티오피아 출신 아브라함 씨


버징고 씨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부룬디 출신이다. 부룬디국립대 경제학과에 다니던 그는 2003년 8월 대구 세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육상 1만 m와 하프마라톤 종목에 참가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 부룬디로 돌아가지 않고 우리 정부에 난민을 신청했다. 부룬디는 투치족과 후투족 사이의 오랜 내전으로 황폐화됐고 투치족이었던 그의 부모가 1993년 살해된 뒤 늘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인쇄공장, 시계공장 등지에서 일하며 체류연장을 다섯 번이나 한 뒤에야 2005년 6월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뛰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던 그는 마라톤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마침 ㈜현대위아 부회장인 김평기 씨도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었다. 버징고 씨의 성실함을 눈여겨보던 김 부회장은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경남 창원시에 있는 본사 국제영업팀에 배치됐다. 지금 그는 중국에 자동차부품을 수출하는 ‘해외영업맨’이 됐다. “진솔하고 마음씨 착한 한국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아예 한국에서 살겠다고 마음먹었죠.”

버징고 씨는 이때부터 ‘4중 생활’을 시작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귀화시험 과목인 국사와 국어를 공부했다. 마라톤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06∼2008년 동아마라톤대회 마스터스 부문을 3연패했다. 2007년에는 2시간 18분 39초를 기록하며 마스터스 부문 최초로 2시간 10분대를 기록했다. 못다 한 학업도 마치기 위해 올해 3월에는 경남대 경영학과에 편입했다. “결혼도 하고 싶은데 연애할 시간이 없어요. 학교도 졸업해야 하고 무엇보다 최고의 ‘영업맨’이 되고 싶거든요.” 올해 10월 귀화시험에 드디어 최종 합격했다.

이제 그는 주민등록 등 행정절차만 거치면 진짜 한국인이 된다. 창원 김씨의 시조로 ‘김창원’이란 한국식 이름으로 등록할 계획이다. 2008년 11월 세상을 떠난 김 부회장이 지어준 이름이다. “도와주신 분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고마움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국적증서를 가슴에 품은 그의 눈망울엔 뜨거운 눈물이 송송 맺혔다.

과천=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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