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훈“낙천적인 삶엔 장애가 없나봐요”

김범석기자 입력 2010-09-15 03:00수정 2015-05-2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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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훈 씨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첫 5급 사무관에 합격 “난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 가족, 친구, 동료, 교수님들… 좋은 사람들로 가득하니 이 행복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

14일 행정안전부로부터 ‘중증장애인 특별채용시험 5급 공무원 합격’ 통보를 받은 지정훈 씨(31)의 미니홈피 첫 화면에 나오는 글이다. 행안부가 취업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2008년부터 시행해온 ‘중증장애인 특별채용시험’에서 5급 공무원 합격자는 3년 만에 지 씨가 처음이다. 방송통신(통신기술) 분야 5급 시험에 응시한 지 씨는 12월부터 특허청 정보통신심사국에서 일한다. “장애를 가진 부산 사나이가 공무원이 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지 씨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자 지체장애(상지) 3급 장애인이다. 어눌한 말 뒤로 긍정의 기운이 느껴졌다.

“대학교(경성대) 대학원(부산대)에서 컴퓨터 공부(컴퓨터공학 전공)만 하다가 사회에는 처음 나갑니다. 합격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면접도 발표도 시험을 보면서 그냥 매사에 긍정적으로 임하다 보니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아요. 전 무지 낙천적이거든요.”

지 씨가 공무원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올해 3월. 그는 부산시교육청에 있는 컴퓨터 관련 ‘정보영재원’에서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쳤다. 12년간 학교에서 컴퓨터 공부만 해오다 남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낀 것. “여태껏 공부해온 컴퓨터 관련 지식을 활용해보자”고 마음먹은 그는 4월 행안부의 중증장애인 특별채용시험 공고를 본 후 방송통신 분야에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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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낙천적으로 살기까지 그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태어난 지 1년도 안 돼 뇌성마비에 걸려 학창시절 내내 언행이 부자연스러웠다. 그래도 남들과 똑같이 공부하고 싶어 일반 학교에 진학했지만 팔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노트 필기 한 번 제대로 못 했다. 필기를 하지 않아도 공부할 수 있는 컴퓨터공학과. 그것이 지 씨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지 씨는 지난달 ‘유전체 서열 분류기법을 이용한 프로그램 유사도 비교’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도 땄다. 그는 함께 합격한 13명의 동료 장애인과 함께 다음 달 4일부터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두 달간 연수를 받는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묻자 그는 “어제까지 아들 취직 걱정을 하시던 부모님에게 이제야 떳떳한 아들이 됐다는 게 기쁠 뿐”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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