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필리핀인 대상 음악방송 DJ-노동법 교육-학업까지 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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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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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 위해서라면…” 하루 4시간 자며 일인다역

18일 오전 9시경 서울 마포구 염리동 다문화가족 음악 전문 방송국 ‘디지털라디오 키스’. 감미로운 음악이 약해지자 필리핀 고유 언어인 타갈로그어가 흘러나온다. DJ는 필리핀 출신 마리아 레지나 아르퀴자 씨(26·여·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대학원·사진). 필리핀인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 가족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원고는 직접 쓴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내용을 알려주기 위해 고민한다”는 것이 아르퀴자 씨의 말. 특히 한국 여행지를 소개할 땐 공을 많이 들인다고 한다. 벚꽃이 피는 기간엔 여의도 윤중로를 소개하는 식이다. 한 번 방송할 때마다 간단한 한국어 배우기 코너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날은 미용실에 간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문장 “짧은 머리는 싫어해요. 이 잡지에 나오는 여성처럼 해 주세요”가 방송을 탔다.

스카이라이프와 인터넷(IP)TV, 인터넷 등을 통해 방송이 나간 지 2년. 아르퀴자 씨 방송이 필리핀인 사이에 유명세를 타면서 지금은 꾸준히 사연을 보내는 ‘애청자’도 생겼다. “한국에 살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슬펐던 점, 기뻤던 점 등을 시로 적어 보내준 동포도 있었어요. 가슴이 뭉클했죠.”

2006년 이화여대 장학생으로 한국에 처음 들어온 아르퀴자 씨는 한국에 살고 있는 다른 동포들의 생활이 매우 어렵다는 데 놀라고 마음이 아팠다. “불법체류자 신분도 많은 데다 위험하고 힘든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고향에 가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하소연도 들었죠.” 이런 동포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어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외에도 아르퀴자 씨는 다양한 필리핀인 모임에 참석한다. 대학연합 한국필리핀학생회에서는 지난달까지 회장을 맡았다. 앞으로는 한국에 처음 들어온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노동법 등을 설명해 억울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해 주는 교육도 담당하게 될 예정이다. 아르퀴자 씨는 이 교육을 위해 요즘 시간을 쪼개 노동법 책과 씨름하고 있다.

학업까지 병행하다 보니 잠잘 시간이 부족해졌다. 요즘은 하루 4시간만 잔다. 수시로 눈꺼풀이 감기기 일쑤지만 그래도 아르퀴자 씨는 하고 있는 일들을 놓을 수가 없다. “저는 한국에서 아주 좋은 대우를 받으며 공부하고 있잖아요. 당연히 어렵게 사는 동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그는 한국 사회에 정중한 부탁도 했다. “2006년보다 다문화가정이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감사해요. 하지만 간단한 한국어 등을 배울 수 있는 언어교실 등이 개설되면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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