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 작은 책상이지만 희망 꽃피울 큰터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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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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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네트워크’ 책걸상 사업
열두살 고은이네 단칸방 찾아

13일 오후 햇볕도 잘 들지 않는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연립주택가 골목 안에서 웃음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사단법인 함께 만드는 세상 ‘희망+네트워크’에서 나온 직원들과 삼성전자 사내 자원봉사팀 ‘벗들이란’ 소속 직원들이 함께 웃으며 일하는 소리였다. 이들은 반지하 단칸방에 사는 고은이(가명·12) 집에 새로 도배를 하고 장판도 깔았다. 고은이는 튼튼한 원목 책상도 생겼다.

동아일보와 함께하는 희망+네트워크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삼성에서 예산 지원을 받아 ‘희망의 책걸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단체 김자옥 팀장은 “지역아동센터(공부방)를 운영하고 있지만 집에 돌아오면 공부할 곳이 없어 바닥에 배를 깔고 공부하는 아이가 많다”며 “공부방에서 돌아온 학생들이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책상을 나눠주는 사업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은이가 받은 책상은 앉은뱅이다. 다리 없는 의자에 책상 크기도 보통 책상의 3분의 2 정도다. 송하경 팀장은 “좁은 방에서 여러 식구가 함께 생활하는 학생이 많아 큰 책상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질 좋은 원목에 친환경 페인트를 칠한 책상은 품질에서는 여느 책상에 뒤지지 않는다.

희망+네트워크에서는 공부방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벽지와 장판을 새로 깔아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실제 작업은 지역별 삼성 계열사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팀이 맡는다.

13일 오후 경기 수원 지역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 사내 자원봉사팀 ‘벗들이란’ 회원들이 고은이에게 선물할 책상을 나르고 있다. “일을 좀 그렇게 해봐라” 하는 농담이 들릴 정도로 모든 회원이 열심히 작업에 참여했다. 사진 제공 함께 만드는 세상
13일 오후 경기 수원 지역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 사내 자원봉사팀 ‘벗들이란’ 회원들이 고은이에게 선물할 책상을 나르고 있다. “일을 좀 그렇게 해봐라” 하는 농담이 들릴 정도로 모든 회원이 열심히 작업에 참여했다. 사진 제공 함께 만드는 세상
고은이는 70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는 고은이가 태어난 지 넉 달 만에 집을 떠났고 지방에서 일하는 아버지도 1년에 서너 번밖에 볼 수 없다. 세 차례의 뇌수술로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77)는 “태권도 학원비가 10만 원이다. 학원에서 무료로 봐준다고 했지만 미안해서 파지를 모으러 다닌다”며 “고은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아야 할 텐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장판까지 새로 깔자 어두컴컴했던 고은이네 집은 몰라보게 밝아졌다. 사춘기여서인지 낯을 가리던 고은이도 깨끗한 집 안을 보자 싫지 않은 눈치다. 5시간 넘도록 일하면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던 이들은 “고은이가 어른이 돼서 큰 집을 사면 그때도 도배는 저희 담당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고은이네 집을 나섰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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