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햇볕도 잘 들지 않는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연립주택가 골목 안에서 웃음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사단법인 함께 만드는 세상 ‘희망+네트워크’에서 나온 직원들과 삼성전자 사내 자원봉사팀 ‘벗들이란’ 소속 직원들이 함께 웃으며 일하는 소리였다. 이들은 반지하 단칸방에 사는 고은이(가명·12) 집에 새로 도배를 하고 장판도 깔았다. 고은이는 튼튼한 원목 책상도 생겼다.
동아일보와 함께하는 희망+네트워크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삼성에서 예산 지원을 받아 ‘희망의 책걸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단체 김자옥 팀장은 “지역아동센터(공부방)를 운영하고 있지만 집에 돌아오면 공부할 곳이 없어 바닥에 배를 깔고 공부하는 아이가 많다”며 “공부방에서 돌아온 학생들이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책상을 나눠주는 사업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은이가 받은 책상은 앉은뱅이다. 다리 없는 의자에 책상 크기도 보통 책상의 3분의 2 정도다. 송하경 팀장은 “좁은 방에서 여러 식구가 함께 생활하는 학생이 많아 큰 책상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질 좋은 원목에 친환경 페인트를 칠한 책상은 품질에서는 여느 책상에 뒤지지 않는다.
희망+네트워크에서는 공부방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벽지와 장판을 새로 깔아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실제 작업은 지역별 삼성 계열사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팀이 맡는다.
고은이는 70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는 고은이가 태어난 지 넉 달 만에 집을 떠났고 지방에서 일하는 아버지도 1년에 서너 번밖에 볼 수 없다. 세 차례의 뇌수술로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77)는 “태권도 학원비가 10만 원이다. 학원에서 무료로 봐준다고 했지만 미안해서 파지를 모으러 다닌다”며 “고은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아야 할 텐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장판까지 새로 깔자 어두컴컴했던 고은이네 집은 몰라보게 밝아졌다. 사춘기여서인지 낯을 가리던 고은이도 깨끗한 집 안을 보자 싫지 않은 눈치다. 5시간 넘도록 일하면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던 이들은 “고은이가 어른이 돼서 큰 집을 사면 그때도 도배는 저희 담당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고은이네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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