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옆집 총각” 보통 사람들의 특별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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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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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등촌동 임대아파트 사람들 삶 담은 ‘오디션’
배우-스태프 모두 주민들… 가수지망생 꿈 그려

서울 강서구 등촌3동 주공아파트 단지에 영화 세트장이 차려졌다. 주인공 권창욱 씨(가운데)와 마을 주민들이 단체로 춤을 추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찍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서울 강서구 등촌3동 주공아파트 단지에 영화 세트장이 차려졌다. 주인공 권창욱 씨(가운데)와 마을 주민들이 단체로 춤을 추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찍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저, 저….” 스크린 속에서 영화 ‘오디션’의 주인공은 대사 한 줄이 그렇게 어려운지 마른 입은 채 떨어지지도 못했다.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어라, 저 형 우리 옆집에 사는 형이네.” 상영회를 보다가 지나가는 꼬마의 한마디에 영화에 집중하던 50여 명의 관객은 웃음을 터뜨렸다.

24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임대아파트 단지에서는 특별한 ‘보통영화’ 상영회가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하고 ‘보통미술 잇다’에서 주관해 만든 영화는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았다. 러닝타임 20분 동안 나오는 영화 속 무대도, 주인공도 모두 동네를 오가며 마주치는 장면들이다.

주인공 권창욱 씨(24)는 이 임대아파트에서 5년째 살고 있다. 권 씨는 어머니와 단둘이 이 아파트에서 살아왔지만 2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더는 이곳에 살 수 없게 됐다. 아파트에 계속 살고 싶으면 보증금을 더 내야 했다. 당장 7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마련하려니 막막했다. 정부에서 나오던 지원금도 딱 끊긴 뒤 권 씨는 편의점에서 밤새워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벌었다. 유통기한을 넘긴 편의점 도시락을 허겁지겁 까먹는 영화 속 장면도 권 씨의 실제 이야기다.

40m²(약 12평)짜리 임대아파트에 남으려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권 씨에게 삶은 빡빡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권 씨는 가수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에는 음치 박치에 잘생긴 외모도 아니지만 매주 오디션에 참여해 떨어지고 다시 도전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도 ‘오디션’이다. 권 씨는 같은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응원에서 힘을 얻는다.

조연도,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도 이곳 주민들이다. 영화 속에서 화려한 미용 기술을 자랑하는 이숙자 씨(70)는 오랫동안 미용실을 운영하다 은퇴한 뒤 이발 봉사를 하고 있다. 매주 장래희망이 바뀌는 개구쟁이 오영민 군(10)은 등교 전 새벽에 일어나 영화를 촬영했다. 오 군은 “내가 영화에 나온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이 구경을 왔다”면서 “실물보다 못 나와 속상했지만 자랑스럽다”며 웃었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이주비 씨(23)는 영화 제작을 위해 열린 영상교실에 6월부터 참가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미술팀으로 참여해 의상을 만들었다. 영화를 제작한 김민경 감독은 그동안 다른 영화를 만들면서 느끼지 못한 감동을 얻었다. 김 감독은 “시나리오를 짜려 주민들과 만나 시시콜콜한 인생 이야기를 접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고 전했다.

8월부터 촬영을 시작해 이곳 임대아파트 단지에서는 여름 내내 영화판이 벌어졌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2000만 원짜리 저예산 영화의 상영회도 막걸리에 파전이 어울리는 소박한 자리였다. 상영회를 찾은 주민 이명순 씨(39)는 “영화에서 내가 사는 곳만 나와도 반갑고 뿌듯한데 우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니 새롭다”고 말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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