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들-딸 구하고 숨진 故권혁금씨 가족 ‘다시 일어서기’

  • 입력 2006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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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아들 진수(왼쪽)와 어머니 권혁금 씨가 일광자연농원에서 고구마 캐기 현장체험학습을 하는 모습. 가족사진은 몽땅 불에 타 없어지고 사직중학교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진수와 어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
지난해 여름 아들 진수(왼쪽)와 어머니 권혁금 씨가 일광자연농원에서 고구마 캐기 현장체험학습을 하는 모습. 가족사진은 몽땅 불에 타 없어지고 사직중학교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진수와 어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
정신지체장애 2급인 딸 은주(18)와 아들 진수(15)를 바라보는 박인호(47) 씨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

주위에서는 자꾸 “자식들을 사회복지시설로 보내야 하지 않느냐”고 권유한다. 하지만 두 자식을 불길 속에서 구한 뒤 저세상으로 먼저 떠나 버린 아내 권혁금(46) 씨를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 없다.

▶본보 21일자 A13면 참조
불길보다 더 뜨거웠던 母情

“아내만큼은 못하지만 아이들을 직접 키우면서 가족임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아내는 진수를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게 키우고 싶어 일반 중학교에 보낸 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등하교를 시켰지요. 초등학교만 졸업한 은주는 장애 정도가 심해 직접 집에서 가르치며 사회성을 길러 줬어요.”

박 씨는 궂은일을 하면서도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두 아이를 키워 온 아내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오히려 미안하다.

‘가난이 죄’라고 한 줌 재로 변한 아내에게 삼우제는 고사하고 화장장에서 바로 탈상을 해 버렸다는 박 씨는 2200만 원의 전셋집이 몽땅 타 버려 오갈 데도 없다.

세 가족은 욕실에서 2도 화상만 입은 채 목숨을 건진 진수가 입원해 있는 부산 금정구 남산동 침례병원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보내고 있다.

6인 병실의 보호자 침대에선 이곳이 어딘지, 동생이 왜 여기에 왔는지도 모르는 은주와 박 씨가 함께 새우잠을 잔다. 낮에는 한 사회봉사단체에서 진수를 무료로 간병해 주고 있지만 이들 가족에게는 이조차 큰 보탬이 되지 못한다.

박 씨는 생계를 위해 당장 경남 양산시에 있는 직장에 나가야 하는데 아들보다 자폐가 심한 딸 때문에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주위에서는 둘을 사회복지시설에 보내기를 권하고 있다.

“함께 생활하면 진수가 지금보다 상태가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예전에는 말도 제대로 못했습니다만 이제 단답식으로 묻고 답하는 것은 가능하거든요. 은주는 상태가 심해 아버지 손길이 꼭 필요한데….”

박 씨의 이런 부정(父情)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수는 크리스마스 날 “엄마가 조금 전에 왔다 갔다”며 아직 어머니가 숨진 사실조차 몰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은주는 이런저런 물음에도 묵묵부답이다.

부산 사직중 김희진(29) 교사는 “진수는 어머니의 정성으로 많이 나아졌는데…”라며 진수가 복지시설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박 씨의 말에 눈시울을 붉혔다. 19만9280원의 성금을 보낸 같은 반 친구들도 진수가 빨리 학교로 돌아오기를 빌었다.

이들 가족의 딱한 소식이 전해진 뒤 대한건설협회 권홍사 회장이 1000만 원을 내놓은 것을 비롯해 간간이 온정의 손길이 닿고 있지만 세상을 헤쳐 나가기에는 힘이 부쳐 보인다.

박 씨 가족의 일을 담당하고 있는 부산 동래구 온천3동 최이석(42) 사회복지사는 “이들이 사회와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며 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대책을 찾고 있다”며 주위의 따뜻한 손길을 부탁했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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