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주기자의 포토스토리]효행상 받는 15살 소녀

  • 입력 2006년 11월 24일 17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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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삼성효행상 수상자들과 심사위원들이 시상식이 끝 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습니다.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여학생이 단양중 2학년 조영주 양입니다.
제31회 삼성효행상 수상자들과 심사위원들이 시상식이 끝 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습니다.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여학생이 단양중 2학년 조영주 양입니다.
학교가을 운동회때 얼굴에 코믹스런 콧수염을 그리고 활짝 웃는 영주.
학교가을 운동회때 얼굴에 코믹스런 콧수염을 그리고 활짝 웃는 영주.
자신보다 작은 키의 엄마지만 영주는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넓고 큰지 안다.
자신보다 작은 키의 엄마지만 영주는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넓고 큰지 안다.
일요일 오후,  엄마 대신 자신과 놀아주는 영주언니가 있어 즐거운 혜민이
일요일 오후, 엄마 대신 자신과 놀아주는 영주언니가 있어 즐거운 혜민이
영어학원 한번 안 가본 영주지만 영어를 곧잘한다.단양읍내 초등생 대상의 원어민 선생님 시간에 통역보조로 자원봉사를 하는 영주.
영어학원 한번 안 가본 영주지만 영어를 곧잘한다.단양읍내 초등생 대상의 원어민 선생님 시간에 통역보조로 자원봉사를 하는 영주.
국어수업중인 영주
국어수업중인 영주
혜민이의 생일축하 케잌에 촛불을 켜놓고 가족이 모두 모였다.달랑 케익 하나밖에 준비한게 없는 조촐한 생일파티이지만 가족과 함께 하기에 행복하다.
혜민이의 생일축하 케잌에 촛불을 켜놓고 가족이 모두 모였다.달랑 케익 하나밖에 준비한게 없는 조촐한 생일파티이지만 가족과 함께 하기에 행복하다.
24일 오전 서울 서소문 호암아트홀에서 삼성복지재단(이사장 이수빈 李洙彬)주최의 제31회 삼성 효행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총16명의 수상자에게 상패와 상금, 부상을 전달했습니다. 효행대상을 받은 김경순(여,42)를 비롯해 수상자 모두는 효행을 몸소 실천해 온 우리들의 이웃입니다. 그들 중 청소년부문 효행상을 수상한 여중생을 소개할 까 합니다.

# 첫 번째 주인공

1급 장애인인 아빠와 하반신이 마비된 엄마를 둔 15살 여중생. 기초생활수급대상인 4인 가정의 집안일을 거의 맡는 장녀. 가정형편 때문에 학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사실상의 소녀가장.

# 두 번째 이야기 주인공

영어 원어민과 자유로운 의사소통 가능한 여중생. 영어로 된 수학원서로 미적분 공부 중. 일주일에 두 번씩 초등학교 영어교육 보조교사로 자원봉사. 상위 5%의 학업성적.

'어려운 환경의 소녀가장'과 '풍족한 환경에서 공부에만 전념하는 우등생'을 비교하는 이야기를 기대하셨나요. 그렇다면 죄송하게 됐습니다. 위의 두 여중생은 한 사람이니까요.

충북 단양중학교 2학년 조영주양이 두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영주의 부모님은 모두 1,2급 장애인입니다.

어머니 박수정씨(41)는 2살 때 척추를 크게 다쳤습니다. 중학교를 마치고 금은 세공일을 하며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할 정도로 꿈이 많았으나 둘째 혜민(7)을 낳은 후 척추 장애가 심해져 하반신이 마비됐다고 합니다.

아버지 조대형씨(47)는 오른팔을 완전히 못 쓰는 1급 장애인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나이부터 일터에서 일을 하다 25살 때 공장에서 기계에 오른 팔이 말려 들어가 장애를 입었습니다. 임대 농사, 공장 경비, 숲가꾸기 공공근로 등 적은 돈이라도 수입이 있다면 가리지 않고 일을 해 왔는데 최근엔 그나마 성했던 왼팔에도 무리가 와 일을 거의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영주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오른팔 이었고 엄마의 다리였습니다. 영주는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2004년 엄마가 척추수술을 마치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3개월 넘게 입원해 있는 동안 영주는 어린 동생을 돌보며 집안일을 혼자 도맡아 했습니다. 생사를 오고가는 대수술의 후유증을 엄마는 두 딸을 생각하며 이겨냈다고 합니다. 지금은 불편하나마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영주네는 지난해 3월부터 단양군 고수동굴 출구 앞에서 기념품 매점을 합니다. 공공화장실 관리를 조건으로 허가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화장실 청소는 영주 몫입니다.

영주 엄마는 초등학교 때부터 한번도 학교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주가 친구들로부터 엄마의 모습 때문에 놀림을 당할 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생활형편이 어려워 잘 돌봐주지 못했지만 구김살 없이 꿋꿋하게 잘 자라준 영주는 대견스런 딸입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까지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엄마와 아빠는 내심 걱정과 미안함이 컸다고 합니다.

영주는 '스승 복'이 많은 소녀인가 봅니다. 훌륭한 스승들을 만났기 때문이지요. 중학교 입학한 이후 성격이 활달해지고 교내 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공부에 열중해 금세 우등생이 됐습니다.

1학년 때 담임 박승룡 선생님과 현재 2학년 담임 서주선 선생님은 영주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셨고, 발명반 어윤재 선생님은 언어감각이 탁월한 영주의 재능을 발견해 원어민 교사 데이브 베이커씨를 소개시켜 주셨습니다. 베이커 선생님의 '생물학 클럽'에서 활동하면서 영어 실력도 부쩍 늘어났습니다. 영어학원 문턱도 가보지 못했던 영주는 클럽 활동을 시작한지 6개월만에 '귀가 트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베이커선생님이 한 주에 두 번씩 여는 '초등생영어특강'에 보조교사학생로 자원봉사를 하며 통역을 맡는 실력이 됐습니다.

영주는 수학 과학도 좋아합니다. 고등학교 수학 과정인 미적분과 과학을 영어원서로 매일 공부할 정도입니다. 방과 후엔 군 교육청이 학업 성적 상위 5%이내 학생을 선발해 운영하는 '방과 후 학교'에서 수업을 받습니다. 공부에 푹~~빠진 것이지요.

자율학습(자기주도적학습)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가 훌쩍 넘기 십상. 늘 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요즘 집안일을 많이 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미안합니다.

며칠간 동행 취재를 하며 그래도 영주에겐 어머니가 가장 큰 스승이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사랑을 많이 준다고 하던가요. 마음이 풍족한 사랑을 받은 영주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엄마는 장애인으로 보내야 했던 자신의 사춘기를 생각하면서 딸에게 끊임없이 말을 붙입니다.

영주의 꿈은 해양과학자. 소원이 '가족여행'인 영주는 바다에 가 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대양을 누비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영주는 제31회 삼성효행상 청소년 부문 수상자로 뽑혔습니다. 영주는 이 상을 어려웠지만 화목했던 가족에게 세상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번져있는 이 따뜻함과 행복이 바다를 향한 영주양의 꿈을 이룰 것입니다.

사진,글=김동주기자

김동주기자 z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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