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의 디스크자키…노래반주기 선곡 담당 정해진씨

  • 입력 2006년 1월 7일 03시 02분


TJ미디어의 노래 선곡자인 정해진 씨는 오랜 경력 덕분에 가요에 대한 지식도 전문가 수준이다. 그는 “최근 노래방에서는 록발라드뿐 아니라 힙합 장르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TJ미디어의 노래 선곡자인 정해진 씨는 오랜 경력 덕분에 가요에 대한 지식도 전문가 수준이다. 그는 “최근 노래방에서는 록발라드뿐 아니라 힙합 장르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이 일은 치열한 시간싸움입니다. ‘요즘 뜬다’는 곡들이 하루라도 경쟁사보다 늦게 들어가면 치명적이죠.”

노래반주기 시장의 45% 정도를 차지하는 TJ미디어 정해진(鄭海珍·29·여) 씨는 ‘노래방 선곡자(選曲者)’다. 이 회사 반주기에 들어가는 노래는 모두 정 씨의 선택을 거친다.

3년 넘게 이 일을 했지만 이런 직업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작가 출신인 정 씨는 우연히 선곡 담당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회사에 지원했다.

그가 지금까지 선곡한 노래는 5000여 곡. 이 가운데 20%가량은 팝송이나 J팝(일본 대중가요)이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헤드폰을 끼고 삽니다. 회사에서는 케이블 음악 채널을 틀어놓고요. 가수들의 새 앨범이나 콘서트, 쇼케이스(시범 공연) 소식도 인터넷으로 하루 종일 검색합니다.”

선곡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각종 가요 차트는 물론이고 휴대전화 벨소리 다운로드 횟수까지도 일일이 확인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방송 인기곡과 노래방 인기곡은 기준이 다르다.

“노래방에서는 자기 실력을 뽐낼 수 있는 노래를 선호합니다. 그러다보니 윤도현의 ‘사랑 투’ 같은 록발라드 곡이 가장 인기가 있죠.”

소수의 ‘마니아’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정 씨는 청계천이나 대형 음반가게에 나가 직접 희귀 음반을 고른다. 한 달에 평균 30∼40장은 직접 구입한다. 인기가수 앨범에서 타이틀 곡 외에 ‘숨겨진 진주’를 발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자신이 고른 노래를 사람들이 많이 부를 때.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이 뒤늦게 ‘대박’을 터뜨릴 때 큰 희열을 느낀다.

“2004년 하반기에 히트 친 장윤정의 ‘어머나’는 사실 그해 상반기부터 반주기에 들어가 있었죠. 처음 듣고 ‘참 신난다’고 생각돼 선곡했습니다. 노래방 때문에 인기를 얻은 면도 있을 거예요.”

가요계에 영향을 미치는 ‘막후의 실력자’인 탓에 겪는 애환도 있다.

‘해병대 출신’이라며 전화를 걸어와 “왜 군가(軍歌)를 안 넣었느냐”고 항의하는 일도 겪었다. 무명 가수들은 하루에도 3, 4번씩 전화해 자신의 노래를 넣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는 “가수들은 노래방에 노래를 넣어야 뜬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뜬 것을 넣어야 하는 입장이어서 그것이 항상 딜레마”라고 말했다.

“나이 지긋하신 분이 사정을 하고 심지어 곡을 넣어 주면 사례를 한다고 해 난감한 때도 많죠. 물론 정중히 사양합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