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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30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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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여전은 서울 중구 정동에 있었는데 유치원도 그 안에 있었다. 그때 황 선생이 나의 유치원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어른이 돼 광복 후 미 군정청 후생시설국장이 된 나는 일 관계로 보화원에서 고아의 어머니로 수고하시던 그분과 더욱 가깝게 지냈다. 대한민국이 건국되자 우리는 유엔의 초청을 받아 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됐다. 나는 미국으로, 황 선생께서는 영국으로 각각 건너가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발발해 나는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10월 초 서울로 돌아왔고 이어 황 선생께서도 10월 하순 귀국했다.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아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를 거듭하는 바람에 또다시 우리는 서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부모 잃은 아이들이 수없이 많이 생겨났는데 미 공군은 이들을 제주도로 실어 날랐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보육원이 생겨났고 황 선생은 이 집의 어머니가 됐다. 이 일로 인해 황 선생은 영화 ‘전송가’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해졌고 한국 고아의 어머니로 평생을 사셨다.
그분은 불행하게도 6·25전쟁 당시 아들 강필국군을 잃었는데 강군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부모 없는 아이들 모두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한 것이다.
오늘 그분의 부음을 듣고 평생 베풀고 바치며 살아온 고귀한 생애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고 경건히 명복을 빈다.
오재경 전 동아일보 사장· 전 문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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