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환자-조선족처녀 죽음앞둔 '눈물의 웨딩마치'

  • 입력 2003년 5월 25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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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한국인 최충렬씨(왼쪽)와 결혼식을 올리던 중국동포 오춘화씨가 예식 도중 울먹이고 있다.변영욱기자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한국인 최충렬씨(왼쪽)와 결혼식을 올리던 중국동포 오춘화씨가 예식 도중 울먹이고 있다.변영욱기자
췌장암 말기,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38세의 신랑이 하객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의 손을 꼭 잡은 신부의 눈에서는 연방 눈물이 흘러내렸다.

25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구로동 서울조선족교회 3층. 이날 열린 ‘눈물의 결혼식’은 췌장암 말기의 최충렬씨(38)가 조선족 아내 오춘화씨(30)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최씨가 아내인 오씨를 만난 것은 1999년.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온 오씨는 사촌언니의 소개로 최씨를 만나 4개월여의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했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의 조선족을 며느리로 맞을 수 없다는 부모의 반대에 부닥쳤고 살면서 부모를 설득하겠다며 2000년 1월 동거를 시작했다.그러나 동거 6개월 만에 최씨가 하던 중장비 임대업이 부도가 나고 사기까지 당해 빚이 1억5000여만원으로 늘어나는 등 시련이 잇따랐지만 이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열심히 살아왔다. 올 2월 딸 다연이가 태어나고 이제 부모님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지만 청천벽력 같은 불행이 닥쳤다. 배가 아파 병원을 찾은 최씨가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은 것. 이미 십이지장과 동맥에 전이돼 수술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최씨는 뒤늦게 아내가 한국에서 다연이를 키울 수 있도록 한국 국적을 얻어주고자 했지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행법상 중국에 두 번 다녀온 뒤 2년 동안 동거해야 국적 취득 자격을 얻을 수 있기 때문. 지난해 불법체류자 자진신고를 한 오씨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석 달. 출국유예기간이 끝나는 8월이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울조선족교회에서는 이들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결혼식’을 마련했다. 법무부에서도 현재 최씨의 사정을 감안해 최씨가 중국에 가지 않고도 ‘법률혼’으로 인정해 줄 길을 찾고 있는 상태다.

이 교회 서경석 목사는 “일단 법률혼으로 인정되더라도 2년 동안 동거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킬 수 없는 상태”라며 “한국인 배우자가 사망하더라도 국적 취득 자격을 주도록 하는 새 개정안이 6월 국회에서 통과돼야 구제될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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