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연출가 하상길, 세실극장 살려냈다

  • 입력 1999년 5월 13일 20시 12분


『한때 우리 공연무대의 꽃이었던 극장이 사라지는건 막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중견 연출가 하상길(51·극단 로뎀대표)이 문닫을 위기에 처해있던 23년 전통의 세실극장(서울 중구 정동)을 제일화재의 도움으로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19일 개관하는 제일화재세실극장.

두산의 연강홀, 삼성의 호암아트홀 등 기업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되는 극장은 적지않지만 기업후원으로 쓰러져가는 극장이 일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극단 운영만으로도 ‘쪼들리는’ 그가 세실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은 1년반 전 건물주인 영국성공회가 극장을 사무실로 개조할 것이라는 소문을 접한 뒤였다.

“77년부터 4년간 초대 대한민국 연극제를 열었던 세실이 이 지경에 이른건 우리 연극인 모두의 책임입니다. 내 집 문을 닫는 것 같아 견딜수가 있어야죠.”

연극 관객의 발이 끊긴 세실극장은 90년대 이후에는 주로 라이브콘서트 장으로 운영돼왔다. 97년말부터 1년간은 아예 공연이 없다시피 했다.

이에 하상길은 사재 8천5백만원을 털어 일단 성공회측에 보증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곤 2억원을 빌어 개보수에 나섰다. 경사가 없어 뒷자리에서는 아예 무대가 보이지 않는 객석을 2백12석의 현대식 시설로 바꾼 것.

개보수를 마친 2월 그는 월세 조달을 위해 다시 후원업체 유치에 나섰다. 일본의 한 담배회사가 좋은 조건에 후원을 자청할 때는 문화마인드 없는 우리네 기업을 원망했다. 제일화재가 돕겠다고 나섰을 때 그는 거의 포기직전이었다.

제일화재는 임대료를 문예진흥원을 통해 기부하기로 했고 하상길은 고마움의 표시로 극장 이름앞에 ‘제일화재’를 붙였다.극단 로뎀은 제일화재세실극장 개관기념으로 21일부터 50일간 연극 ‘요나답’을 공연한다.02―736―7600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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