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법만 가르치고, 존중하는 법 잊은 한국 스포츠의 민낯[기고/조욱상]

  • 동아일보

조욱상 한국체육대 체육학과 교수
조욱상 한국체육대 체육학과 교수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든 한국 축구 대표팀의 내홍,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며 서로를 탓하는 지도자와 선수들의 언행은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고교야구에서는 더욱 충격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청룡기 대회에 나선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상대 팀 광주제일고를 향해 역사를 비하하는 듯한 조롱 섞인 구호를 외치다 6개월 출전정지 중징계를 받은 것이다. 가장 공정하고 순수해야 할 스포츠 무대가 어쩌다 서로를 탓하는 불통의 현장이자 사회적 혐오를 배설하는 창구로 전락했는가.

스포츠 현장에서 성숙하지 못한 언행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경기력이라는 ‘기술’ 교육에만 치우쳐 올바른 가치관을 기르는 ‘인간’ 교육을 소홀히 해 온 우리 전문체육 시스템의 고질적인 그늘이 자리하고 있다. 오직 승리와 성적이라는 눈앞의 결과에만 몰두하다 보니 스포츠를 통해 배워야 할 사회적 공감과 타인에 대한 배려는 늘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결과 경기력은 뛰어날지언정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반쪽짜리 기능인’들이 양성되어 왔다.

우리가 성적 지상주의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이웃 나라 일본의 스포츠 현장이 보여주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이 보여준 끈끈한 조직력과 패배 앞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성숙한 태도는 우리 대표팀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이러한 차이는 청소년기 교육에서부터 갈라진다. 일본 고교야구 ‘고시엔 대회’나 전 열도를 들끓게 하는 ‘하코네 역전 마라톤 대회’를 보면 스포츠를 향한 남다른 진지함과 경외심이 묻어난다. 그들에게 경기장은 단순히 승패를 가르는 전쟁터가 아니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동료와 연대하며, 삶의 태도를 배우는 신성한 교육의 장이다. 일본이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 잡은 비결은 단순히 훈련량이 많아서가 아니다. 운동을 통해 인격을 도야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먼저 가르치는 스포츠 교육 본연의 가치가 현장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 체육계는 자진 사퇴나 출전정지 같은 사후 약방문식 징계로 상황을 모면하기 바쁘다. 그러나 처벌과 격리만으로는 무너진 스포츠 정신을 바로 세울 수 없다. 이제는 근본적인 교육적 처방이 필요한 때다. 우선 학교 운동부의 교육과정에 경기장 안팎에서의 올바른 소통법과 갈등 관리, 리더십을 다루는 인성 교육이 자리 잡게 해야 한다.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스포츠맨십의 진짜 의미를 가슴으로 이해하게 만들어야 한다.

잘못을 깨닫고 성장하게 하는 ‘회복적 교육’ 역시 절실하다. 배재고 야구부 사태처럼 중징계로 학생들의 미래를 막아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징벌에 그칠 게 아니라, 가해 학생들이 자신들의 행동이 초래한 역사적·사회적 상처를 깊이 깨닫고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며 동행할 수 있는 ‘교육적 회복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훨씬 실효성 있는 처방이다. 광주를 직접 찾아 고개를 숙인 배재고와 이를 받아준 광주제일고가 모범답안을 보여줬다.

스포츠는 단순히 공을 차고 던지는 기술의 향연이 아니라 규칙을 준수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공동체의 가치를 배우는 역동적인 교육의 장이다. 체육계와 교육계 전반의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기능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근본적인 스포츠 교육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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