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하늘을 탓할 때가 있다. 태어난 것부터 제 뜻이 아니었다는 듯한 왕범지의 이 항변은 얼핏 웃음을 부른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낳았으면 책임지라는 푸념에 가깝다. 그러나 이 시를 그저 세상살이 푸념으로만 볼 수는 없다. 승려였던 그의 시는 통속적인 말로 불교의 이치를 풀고 세태를 풍자하며 사람을 깨우쳤다. 이 시 역시 겉으로는 하늘을 원망하지만, 그 밑바닥에서는 태어남 자체를 묻는다. 왜 인간은 이토록 쉽게 결핍과 고통 속에 놓이는가. 이런 물음은 세속의 불평인 동시에 불교가 말하는 고(苦)의 인식이기도 하다. 삶이 괴롭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존재의 까닭을 캐묻는 것이다.
시의 마지막 탄식도 단순한 염세로만 읽히지 않는다. 태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번뇌 이전의 자리, 업(業)의 물듦 이전의 본래 마음을 더듬는 말처럼도 들린다. 선가(禪家)의 말로 하면 탁한 마음을 벗고 본래의 청정으로 돌아가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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