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준금리가 너무 높다고 불만이다. 한국 대통령들은 시중 금리에 무척 민감하다. 한국이 가계부채 대국이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는 2013년 말 1000조 원을 넘었다. 12년이 지난 9월 말 현재 역대 최대인 1968조 원으로 불었다. 6·27 부동산 대출 규제로 증가 폭이 줄어든 결과를 위안 삼아야 할 처지다. 가계부채 관리에 실패하다 보니, 역대 대통령들이 서민 금리 걱정을 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은행 종 노릇, 금융계급 탓한 대통령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로 가계부채가 1년 만에 155조 원 불어난 2021년 3월 국무회의에서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했다. 정치인 눈에 모순처럼 보여도 신용을 근간으로 하는 금융 시장에서는 거래 상대방 위험을 따지는 게 상식이다.
국가도 다르지 않다. 문 전 대통령 논리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국가가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을 주장한다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정치적 수사가 통했다면 1997년 말 외환위기도 없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국은행이 코로나19로 풀린 시중 돈을 빨아들이고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달아 올리는 시점에서 ‘은행의 종 노릇’ ‘갑질’이란 거친 표현을 쓰며 고금리를 탓했다. 당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을 돌며 금리 인하를 압박하자, 은행 대출금리가 내려가고 주택담보대출이 불어났다. 가계빚을 줄여야 할 긴축 시기에 시중 금리와 부채가 역주행하는 일도 일어났다.
경제 성장률이 1% 턱걸이를 하는 저성장 국면에서 집권한 이재명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처럼 금리와 소득을 연계한 인식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현재의 금융 제도는 가난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강요받는다”며 “금융계급제가 된 것 아니냐”고 했다. 저소득층이라고 해도 모두 비싼 금리를 강요받는 건 아니다. 금리는 신용에 따라 달라진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은 “저소득층 중 고신용자가 202만 명이 있다”며 ‘저소득층=고금리’ 주장을 반박했다.
금융계급제를 우려한다면 금리 격차를 탓하기 전에 금융 접근성 격차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부터 관리해야 한다. 최근 대출 규제는 소득에 따른 상환 능력을 따진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이 상승할 때 고소득층은 금융회사 대출을 받아 투자하고 자산을 불릴 수 있지만, 저소득층은 은행 돈으로 투자하는 게 어렵다. 자산 시장에 거품이 끼지 않도록 관리하고 저소득 고신용자들이 금융 시장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챙겨야 한다.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금융부채 보유 가구의 80%는 “대출기한 내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했다. 4.5%는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이들에겐 채무 재조정 등을 통해 재기 기회를 마련해 주되 성실하게 빚을 갚으려는 80%의 의지를 꺾는 역차별은 없어야 한다.
금리 고통 키울 ‘3L’ 경계해야
대통령들의 걱정에도 서민들의 금리 고통은 여전하다. 고통의 발원지인 저성장 고부채의 뒤틀린 경제 구조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부채 보유 가구의 46.2%는 1년 후 부채 증가 원인으로 주택 구입, 전월세 보증금 등 부동산을 꼽았다. 18.5%는 생활비 마련을 걱정했다. 은행을 압박해 장기 연체자의 채무 조정을 위한 배드뱅크 재원을 마련한다고 해도 부동산 안정, 일자리 대책이 함께 가지 않으면 빚의 수렁에 다시 빠지는 연체자들이 생긴다. 은행이나 금융 당국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특히 지금은 해외 언론에서도 경고하듯이 금리 고통을 키울 과도한 ‘빚투’(leverage), 지나친 유동성(liquidity), 투자 광기(lunacy) 등 ‘3L’을 경계할 시기다. 금리 탓할 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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