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예전에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할 때 벽지에 바르는 풀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다. 풀 때문에 벽지가 제대로 마르지 않아 주름이 완전히 펴지지 않는 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현장 전체 도배가 동일한 풀로 시공됐기 때문에 수백 가구의 벽지 주름이 모두 펴지지 않았고,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보수 작업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인력, 비용이 소요됐다.
원인은 풀 제조회사가 생산 과정에서 첨가한 특정 성분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돼 갈 무렵, 이 일의 책임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대부분은 풀 제조회사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현장 도배를 총괄하는 도배 소장님만은 다른 의견을 냈다. 그에 따르면 풀 회사가 모든 비용을 혼자 감당하게 되면 도산이 분명하고, 그 여파는 결국 모두에게 미치므로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원청회사인 건설사와 도배 협력업체, 현장 도배소장, 풀 회사가 함께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후에도 소장님은 해당 풀 회사의 풀과 부자재를 계속 사용하며 그 회사가 재기하도록 도왔다. 나는 이때 ‘공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
신축 아파트 현장을 떠나 현재는 인테리어 업체의 도급을 받아 도배 일을 하고 있는 요즘, 까맣게 잊고 있던 공생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고 있다. 인테리어 업체와 도배 업체,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도배사들은 모두 공생 관계다. 인테리어 업체는 도배 업체가 있어야 현장을 마무리할 수 있고, 도배 업체는 도배사들이 있어야 작업이 가능하다. 반대로 도배 업체는 인테리어 업체로부터 계속 도급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으며, 도배사들 역시 도배 업체가 잘 돼야 꾸준히 일감이 생기고 일당을 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갑을관계나 긴장관계가 형성될 순 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임은 분명하다.
중간 위치에서 도배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나 역시 이 관계 속 균형을 잘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테리어 업체에도, 도배사들에게도 필요한 존재가 돼야 하고, 동시에 필요한 역할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내가 인테리어 업체나 함께 일하는 도배사들의 사정을 봐주기도 하고, 반대로 그들이 내 사정을 이해해 줄 때는 이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모든 순간이 원칙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인테리어 업체가 고객에게 잔금을 받지 못해 도배 업체에 비용 지급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고, 여러 공정이 겹쳐 도배사들이 최적의 환경에서 일하지 못하는 상황도 많다. 또 때로는 도배사들의 작업 마감이 완벽하지 못해 소비자의 불만이 인테리어 업체로 향하기도 하고, 반대로 내 정산이 늦어져 도배사들에게 일당을 늦게 지급하는 미안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팀도, 완벽한 업체도 없다. 모두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모자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불완전함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배려와 협력, 공생의 마음으로 채우면 좋겠다. 일단 나부터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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