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택동]‘현직 비판 않는다’ 불문율 깬 美전직 대통령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20일 23시 18분


미국에는 전직 대통령이 아무리 후임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공개적인 비판을 삼가는 불문율이 있다. 200년 넘게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전·현직 대통령 간의 갈등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오랜 전통이다. “나라를 하나로 묶고 정부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미 정치전문매체 ‘더힐’)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불문율이 흔들리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시도에 의해 우리의 삶이 압도된다면, 건국 이래 더 완벽한 연방을 위한 250년간의 여정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앞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에서는 ‘그건 옳지 않다’라고 말하는 평범한 시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를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분명하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도 “이 정부는 100일도 안 돼 너무나 큰 피해와 파괴를 가져왔다”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세 사람 모두 트럼프와 이런저런 악연이 있기는 하다. 트럼프는 바이든을 향해선 “졸린 조”, 클린턴의 아내이자 2016년 대선에서 맞붙은 힐러리는 “사악한 힐러리”라고 부르며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오바마가 처음 대선에 출마했을 때는 ‘미국 태생이 아니다’는 허위 정보를 퍼뜨렸다. 그렇다고 유례가 없는 전직 대통령들의 동시다발적 현직 대통령 비난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긴 어렵다. 트럼프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감이 심상치 않아서다.

▷트럼프가 보조금 중단을 무기로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등 ‘진보의 아성’으로 꼽히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길들이려 하자 미 지식인들과 대학가가 들끓고 있다.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이민자 추방 정책에 보수 성향인 대법원이 ‘정부는 추방을 잠정 중단하라’며 제지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연방정부 직원들을 대규모 해고하면서 관가 분위기도 흉흉하다. 트럼프의 대표 정책인 관세 인상으로 시민들은 물가 상승, 기업들은 미국의 대외 이미지 하락에 따른 해외 영업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반(反)트럼프 시위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19일 워싱턴, 뉴욕 등 미국 700여 곳에 모인 시민들은 “창피하다” “왕은 없다”고 외치며 집회를 열었다. 미 전역에서 ‘핸즈오프(Hands Off·트럼프는 손을 떼라)’ 시위가 벌어진 지 2주 만이다. 미 갤럽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1분기(1∼3월) 지지율은 45%로, 1952년 이후 취임한 대통령들의 첫해 1분기 평균 지지율 60%보다 한참 낮다. 이대로라면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 의원들이 ‘손절’에 나설 수도 있다. 국민을 이기는 정치는 없다. 트럼프가 끝까지 독주를 계속할지, 아니면 중간에 돌아설지는 미국인들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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