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관세 겁박하더니 “남는 달걀 좀” 손 벌리는 트럼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16일 23시 18분


요즘 미국의 마트에선 이른 아침부터 달걀 손님들이 수십 m씩 줄지어 선다. 이들이 개장과 동시에 달걀 코너로 몰려들어 직원들은 안전사고라도 날까 봐 바짝 긴장한다고 한다. 구매 가능 개수가 1인당 12개로 제한돼 있어 더 가져가는 손님이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정오쯤 달걀이 한 번 더 입고되는데 아침에 못 사고 돌아간 이들이 더 필사적으로 달려든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덜 비싼 달걀을 사기 위해 벌어지는 오픈런 현장이다. 미국의 계란값이 너무 오른 탓이다. 올 1월 기준 12개들이 달걀 평균가(4.95달러)가 전년 동월 대비 50% 넘게 폭등했다. 뉴욕 같은 대도시에선 12개짜리 한 판이 10달러(약 1만4500원)가 넘는다. ‘금값’이다 보니 계란 털이범들도 나오는데 식당 냉장고에 있던 달걀 수십 판이 사라지는 사건부터 화물 트레일러에 실린 계란 10만 개가 통째로 도난당한 일도 있었다.

▷미국에선 최근 2, 3년 새 조류독감으로 암탉들이 대규모 살처분됐다. 자연히 달걀 공급도 크게 줄었다. 조류독감 예방에는 백신 등 보다 근본적 대안이 필요하지만 닭고기 주요 수출국인 미국은 백신 개발에 소극적이다. 백신을 맞은 가금류 제품은 일부 국가에서 수입을 꺼리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살처분에 의존하다 보니 조류독감이 덮치면 계란값이 크게 출렁인다.

▷흔한 식재료여서 만만하게 보이지만 계란은 물가 상승의 도화선이 되는 품목 중 하나다. 아침마다 계란 후라이나 오믈렛 등으로 거의 매일 먹기 때문에 조금만 비싸져도 바로 체감되는 데다 빵, 파스타 등 계란이 들어가는 다른 식료품도 같이 오른다. ‘에그플레이션(eggflation)’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방위적 관세 전쟁으로 물가 상승 우려가 큰 상황에서 계란값 폭등은 정권을 시험에 들게 하는 악재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은 최근 낙농 강국인 덴마크에 계란을 수출해 달라고 SOS를 쳤다. 얼마 전까지 덴마크령인 그린란드를 팔지 않으면 무자비한 관세를 물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는데 이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덴마크는 자국 내 계란 수요를 맞추기에도 빠듯하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도움을 청한 나라에는 한국도 있다. 충남 아산시의 양계농장에서 며칠 전 33만 개를 수출했는데 한국산 계란이 미국에 수출된 첫 사례다.

▷작은 것이 복병이 되곤 한다. 초강대국인 미국도 조류독감으로 계란이 부족해지면 덴마크나 한국과의 무역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상대국을 존중하는 외교와 통상의 중요성을 깨달으면 좋으련만 그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닭들을 대거 살처분했던 게 문제”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있어 미국의 계란 파동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관세#겁박#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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