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트럼프와 이재명의 차이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3일 23시 18분


박용 부국장
박용 부국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두 달 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이는 내가 ‘한국의 트럼프’ 같다고 한다”며 자신은 “현실주의자(realist)”라고 소개했다. 정파에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실용주의자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강성 지지층이 있고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경제를 보는 현실 감각은 닮은 점보다 다른 점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과 이 대표는 모두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기술 투자를 중시하지만 접근법이 다르다. 이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기본적 삶이 보장되는 삶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라며 AI의 일자리 대체를 기정사실화하고 기본소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의 현실적 위협을 주목하고 AI 첨단 기술을 산업과 국가 안보가 연계된 패권 경쟁의 틀로 바라본다. 이 같은 관점의 차이는 결과로 나타난다.

AI 기술 관점 차이가 만든 한미 격차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180일 이내에 미국의 AI 우위 확보를 위한 행동계획 수립을 지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중국에 대한 첨단 AI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는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오픈AI 오라클 소프트뱅크가 AI 인프라 확보를 위해 5000억 달러를 투자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발표 자리에도 함께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를 위한 전력 확보 지원도 약속했다.

AI 세계 최강국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한국은 말만 무성하다. 전력 소모가 많은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 필요한 전력망 확충 특별법,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은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챗GPT에 푹 빠져 있다”는 이 대표가 AI 투자에 진정성이 있다면 이렇게 시간을 끌 일이 아니다.

이 대표는 “기업이 앞장서고 국가가 뒷받침해, 다시 성장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했지만 ‘민간 주도 정부 지원’ 구호는 10년 넘게 정부 정책, 정치인 공약에 단골로 등장하는 구호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 대표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을 호출하거나 “비정상적 지배 경영구조를 혁신해야 한다”며 기업 경영에 대한 개입을 당연시했다. 기업들이 “투기자본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도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가 주목하는 취임식에 미국 빅테크 CEO들을 상석에 앉혀 힘을 실어주었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10분의 1의 투자와 인력으로 챗GPT에 필적하는 추론 능력을 보유한 ‘R1’을 공개했을 때는 “(딥시크의 AI가) 미국 제품보다 더 빠르고 훨씬 저렴해 보인다”며 오히려 미국 기업을 압박했다. 경쟁자인 중국 기술을 무시하지 않고 자국 기업을 밀고 당기며 경쟁과 혁신을 이끌어내는 게 트럼프 방식이다.

성장론에 저성장 탈출 위한 ‘킥’ 없어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이 대표는 “성장의 기회와 결과를 함께 나누는 공정 성장이야말로 실현 가능한 양극화 완화와 지속 성장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공정 성장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10년 전에 들고나왔던 구호다. AI 로봇 스마트폰 로봇청소기와 같은 기술 제품은 물론이고 석유화학 철강 조선 자동차 등 한국 주력 산업조차 중국 기업의 밀어내기 공세에 시달리고 1%대 저성장을 우려하는 현실에서 ‘성장 기회와 결과를 함께 나누자’는 공정 성장은 이상론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의 대선에서 승리한 건 민생을 파고든 미국 우선주의 공약이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다른 점은 그의 성장론에 아직 사람들의 가슴을 펄떡펄떡 뛰게 하는 ‘킥(매운맛)’이 없다는 것이다.

#이재명#트럼프#인공지능#AI 투자#공정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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