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울지 않았다는 얘기[동아광장/김금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6일 23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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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말, 기억 감퇴… 아빠를 찾아온 병
누구도 예외 없을 가까운 이와의 이별
아직은 울지 않은 사람에게 걸어오는 중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멀리 떠나 있던 2월, 아빠와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대체로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내가 보낸 사진에 답이 오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가족들에게 캐물었고 아빠가 입원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극에서 돌아올 수도 없고 걱정만 한다며 며칠간 내게 전하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고 얼마 뒤 아빠는 전신에 무력감을 느꼈다. 늘 다니던 길에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멍투성이가 됐다. 어느 날은 주차하려는데 어떤 동작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아빠는 30분 넘게 차를 방치한 채 앉아 있었고 불쑥불쑥 엉뚱한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난생처음 겪은 아빠의 섬망 증세, 혼돈과 의식 저하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입원해서도 가게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며 자기만의 세상에서 소리 지르는 아빠 때문에 결국 일인실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는 말 그대로 픽션 같았다.

아빠는 일평생 단추가 달려 있는 셔츠만 고집한, 내가 어느 소설에 쓴 것처럼 작은 앞섶 주머니에 늘 볼펜을 넣어두고 단정히 일상을 준비한 채 자기만의 루틴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때로 음식점에 가서 메인 요리가 아니라 저렴한 단품 음식을 시키면 주인에게 미안해할 정도로 다른 사람을 의식하던 사람이었다. 그 밤 검고 큰 고양이처럼 엎드려 있는 남극의 섬을 바라보며 나는 이 믿을 수 없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황망해했다. 이후 아빠가 퇴원하고, 나 역시 서른네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와 본가를 찾아갔다. “아빠 많이 좋아졌다. 만날 때까지 안녕”이라는 문자를 받은 터라 마음은 한결 나아져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여전히 제대로 걷지 못했고 표정도 달랐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입원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가게 앞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자 엄마가 달려와서는 울기 시작했다. 길에서 태어나 이제 가게 계산대에서 하루를 보내는 고양이 볼트의 눈이 놀라 둥그레졌다.

“그러게 내가 가게 연다고 했는데……. 일찍 일어나더니만…….”

아빠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아연히 서 있다가 엄마가 눈물을 터뜨린 이유를 그렇게 해석했다. 그동안 고생한 가족들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은 나는 아빠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빠의 병은 수분과 나트륨 균형이 깨지면서 생기는 저나트륨 혈증이었다. 병명 자체는 소금 부족이라 단순하게 해석되지만 심하면 뇌부종, 발작, 혼수 등 다양한 신경학적 증상을 일으키는 무서운 병이었다. 한동안 창밖을 보고 있던 아빠가 “근데 네 엄마가 왜 울지?” 하고 내게 물었다. 나는 백미러로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빠는 아주 먼 세계, 여기와 너무나 달라 누구에게 설명조차 할 수 없는 특별한 곳을 혼자 다녀온 표정이었다. 남극을 보고 온 나처럼.

“아빠, 나 어디 갔다 왔어?”

그날도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아빠는 차창으로 내려온 봄빛을 맞으며 아연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긴장이 들었다.

“남극 갔다 왔지.” 이내 아빠가 기억해 주자 좁은 폭의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건넌 듯한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러니까 울지, 남극 다녀온 딸을 오랜만에 보니까 눈물이 나는 거야.”

그 대화만으로도 나는 그간 보지 못한 삶의 어느 측면과 비로소 대면한 듯했는데, 아빠는 한마디를 더 얹으며 또 다른 각도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 지금까지는 울지 않았다는 얘기네.”

그렇게 보낸 3월 동안 나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기립 지지대와 안전 손잡이들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중고 거래 앱을 검색하다가 엄마를 위해 설치했지만 이제 요양원에 입소하시면서 필요 없게 되었다며 2m짜리 안전봉 30개를, 그냥 나누는 것에 불과한 가격으로 팔고 있는 이웃을 알게 되기도 했다. 모든 1인칭들은 죽음에 있어, 3인칭으로서의 타자의 죽음이 아니라 2인칭의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통해 각별해진다는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의 말을 곱씹기도 했다.

그러면 여태까지는 그런 무지가 허용될 만큼 단지 운이 좋았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예약증과 처방전을 든 채 검사실과 진료실을 누비는 내 발걸음도 천천히 느려졌지만 그때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내 곁을 지나 죽음처럼 넓은 병원 복도를 열심히 누비고 있었다. 한두 번쯤 울기야 했겠지만 아직 진짜로 울지는 않았을 사람들이. 그러면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부드러운 경계가 밀려 들어왔고 나도 목적지를 향해 다시 걸었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기억#감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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