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의 나라’ 명성을 지키려면[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10〉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0일 2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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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전국에 산재해 있는 패총에서 굴 껍데기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다. 사시사철 채취할 수 있는 조개류와 고둥류 등이 다양함에도 독소가 발생해 특정 시기에는 먹지 못하는 굴의 비율이 월등하다. 이로써 오래전부터 굴이 한반도 해안가에 번성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예로부터 굴은 보리 이삭이 패면 먹지 말라고 했고, 벚꽃이 지면 캐지 않는다고 했다. 유럽에서는 ‘R’자가 들어가지 않는 5월부터 8월(May, June, July, August)에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굴은 이 시기에 산란기 독소가 생성돼 아린 맛이 난다.

수산 시장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굴을 그물망에 가득 담아서 무게 단위로 판매하는 광경을 보면 놀란다. 한국처럼 싼 가격에 굴을 먹을 수 있는 곳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남해, 서해는 굴 양식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어 수확량이 많다. 한국은 저렴한 가격으로 굴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데다가 이제는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요즘 손님을 초대할 때면 개체굴(기존 다발 양식과 달리 개체 간격을 띄워 양식한 굴)을 자주 내놓는다. 올겨울 우리 집을 방문해 개체굴을 맛본 지인이 10여 명에 달하는데 모두 처음 먹어봤단다. 개체굴은 참굴에 비해 월등히 크고, 진한 맛과 향긋함이 일품이다. 무엇보다도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중에서 흔히 보는 참굴은 껍질을 포함한 무게가 100g 미만이다. 개체굴은 참굴과 마찬가지로 염색체가 2쌍인 2배체(100∼150g)와 염색체가 3쌍인 3배체가 있다. 3배체굴은 200∼300g으로 어른 손바닥만 하다. 성장률도 참굴에 비해 2.5∼3배에 달한다. 생식소 발달에 사용할 에너지를 성장하는 데에 이용해 빠르고 크게 자란다. 또한 독성을 만들지 않아 연중 생산할 수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2014년 3배체굴 생산을 위한 4배체 기술을 획득했다. 인공종묘배양장에서 4배체굴의 정자와 2배체굴의 난을 수정시켜 3배체굴 생산에 성공했다. 2015년 대량 생산을 위한 시범 양식을 추진했고, 2016년 어민들에게 모패를 분양했다. 참굴 양식은 통영 바다에 70%가 집중돼 있으나, 개체굴 양식장은 통영시, 거제시, 남해군, 고성군, 고흥군, 신안군 등 남해안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기존의 참굴 양식장에서 사용하는 스티로폼 재질의 부표(1만 ㎡당 1600여 개) 사용량을 개체굴 양식에서는 대폭 줄인(1만 ㎡당 600개) 친환경적인 양식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부가가치 높은 굴 생산 못지않게 뒤따라야 할 건 양식장의 위생 환경이다. 생굴을 좋아하던 사람도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돼 고생한 후 굴을 기피하는 경우가 꽤 있다. 정화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양식장 인근 화장실이나 어선과 낚싯배 등에서 유입되는 인분의 폐해는 심각하다.

201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한국 굴 양식장에서 식중독 원인균인 노로바이러스를 검출했다. 양식장으로 인분이 유입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한국산 굴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후로 남해안의 여러 지자체는 해상 공중화장실을 설치하는 등 환경 정화를 위해 노력했고, 수출은 재개됐다. 지자체와 양식장 어민들의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돼 고생한 경험담을 자주 접한다. 굴 소비 시장을 확장하는 지름길은 노로바이러스로부터 청정한 바다를 만드는 것이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굴#굴 양식#최적화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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