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들에게[이준식의 한시 한 수]〈232〉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5일 23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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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달 찬 하늘에 떠오르면 사람들은 세상이 다 같다고 말하지만,
천 리 밖 비바람이 몰아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하리오.
(圆魄上寒空, 皆言四海同. 安知千里外, 不有雨兼风.)

―‘한가위 보름달(중추월·中秋月)’ 이교(李嶠·약 644∼713)


옛사람들은 달빛이 공평하게 이 세상을 골고루 비춰 준다고 믿었다. 두둥실 보름달이 떠오르면 온 세상이 다 함께 그 밝은 달을 즐기리라 생각하고, 몸은 서로 떨어져 있어도 둥근달을 공유하면서 한마음이 된다고 자위하곤 했다. ‘(한가위 보름달은) 저 하늘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닿아, 사사로이 한 집만을 비추는 법이 없지’(당 조송·曹松)라 했고, ‘(아우야, 우리가) 만 리 떨어져 있다 해도, 오늘 밤 이 달은 맑고 흐림이 매한가지라 들었네’(송 소식·蘇軾)라 했다. 하지만 시인은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불공평과 차별을 연상한다. 어디선가는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오르겠지만 어디선가는 또 비바람이 거칠게 몰아치기도 하는 게 인간사라고 본 듯하다. 불공평과 차별은 소외된 자에게는 더 각별하게 다가오기 마련이고 마음의 상처 또한 더 크다. 시인은 세상의 소외자들에게 위로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매사 한 측면만 보고 섣불리 전체를 예단할 필요는 없다, 피상적 현상에 얽매어 본질을 놓치는 우(愚)를 범하지 말라고 저들을 다독이는 듯하다.

이 시는 두 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시 가운데 제2수. 제1수에서도 시인은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푸른 하늘에서 이지러지고 또 둥글어질 때, 오랜 세월 동풍이 휘몰아쳤지. 어느 누가 계수나무를 심었는지, 바퀴 밖으로는 그 가지가 벗어나질 않네’라 했다. 온갖 곡절과 풍파를 겪으면서도 쉬 흐트러지지 않는 곧은 선비의 지조를 달의 형상에 빗댔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한가위#보름달#소외된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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