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변화가 아쉬운 이유 [안드레스 솔라노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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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왜 한국인들은 해외에 나간 뒤 약 4일째가 되는 날 필사적으로 한식당을 찾아 나설까?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마침내, 줄까지 서가며 외국에서 한식을 먹고자 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들이 그리워하는 건 매운 음식이나 발효 음식, 찰기 흐르는 쌀밥 같은 것이 아니다. 한국인이 원하는 것은 바로 국물이다.

내가 아는 한 국, 탕, 찌개, 전골 등 수프나 스튜 계열의 음식이 한국처럼 다양한 나라는 없다.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의 레스토랑에서는 주메뉴로 수프를 만날 수 없다. 파리에서는 양파 수프나 크림 수프 이상의 기발한 국물 요리를 볼 수 없으며 이 음식들도 항상 빵과 함께 제공된다. 한국인의 입맛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다. 지방이나 시골에 가면 맛있는 수프를 먹을 수도 있지만, 굳이 거기까지 가게 되면 에펠탑이나 사그라다 파밀리아처럼 유명 관광지 앞에서 찍는 사진을 한 장도 못 건지게 된다. 그러니 일단 관광지에는 가되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처럼 평범한 식사를 할지언정 한식당 앞에 줄을 서는 것이 그나마 나은 선택으로 보인다.

2011년, 비가 오는 런던 시내를 여행하다가 점심으로 뭘 먹을지 몰라 갈팡질팡했던 때가 떠오른다. 피자는커녕 케밥이나 인도 음식도 당기지 않는 하루였다. 그러다 번뜩 당시 머물던 동네의 지하철역 근처에 한국 식당이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때는 한식이 유행하던 때가 아니었으므로 줄도 설 필요가 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들어가 조개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주문해 첫술을 떴다. 신체와 영혼이 다시 하나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식당에서 먹는 음식이 점점 더 달콤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양념에 설탕이나 시럽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반찬에도 말이다. 그래서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 식당에 가면 한식은 맵기도 하지만 달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오히려 자국의 오래된 한국 식당에서 먹어 본 한식과는 꽤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 이렇게 변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알고 있을지도. 설탕은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험하다. 아마 한국에서도 최근 수십 년 사이 당뇨병 환자가 급증하지 않았을까.

지금 한국의 관광지에서 인기 있는 한국 음식은 100년 전 식탁에 올랐던 음식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가 전통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여기는 카르보나라 스파게티나 티라미수가 비교적 최근에 발명된 요리인 것처럼 말이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이탈리아처럼 전쟁의 잿더미에서 일어나 경제적인 성공을 이룬 국가가 세계인의 눈에 문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영광스러운 과거를 만들고자 할 때 빛을 발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이탈리아 가정에서는 일요일에만 파스타를 먹었고 나머지 끼니는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로 만든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요즘 외국에서 떡볶이나 자장면 같은 요리들이 한식의 새로운 대표 주자로 퍼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진짜 한국 음식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도 하는 이 음식들은 내가 아는 한국 요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음식이다. 20년쯤 지나면 로제 고추장 스파게티야말로 진짜 한식이라고 소개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에 처음 왔던 2008년, 내가 살던 동네 식당 대부분은 보리차나 옥수수차를 물 대신 내 왔다. 계산대에 계산하러 갔다가 작은 ‘야쿠르트’를 받았던 적도 드물지 않다. 이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외국 유명 요리사가 한국을 방문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아직도 고깃집에 데려가는 걸 보면 가끔 화가 난다. 어째서 ‘닭한마리’를 소개하지 않는 걸까? 닭에서 나오는 육수와 이후 첨가하는 칼국수의 전분 덕분에 눈앞에서, 그리고 먹으면 먹을수록 국물의 풍미가 깊어지는 놀라운 요리는 세련된 취향의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마저 감탄한 최고의 창조물이다. 물론, 나에게 최고의 요리는 활어회를 먹고 난 후 남은 뼈로 끓인 매운탕이나 해물 전골, 그리고 그 국물이 끝나갈 때쯤 만들어 먹는 볶음밥이나 죽이다. 이런 메뉴는 한국이 부유하지 않았던 시절 재료의 모든 것을 아껴서 활용하고자 했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일 테다. 원래 있던 요리에 미각적으로 아무런 상관없는 것들을 집어넣은 우스꽝스러운 요리와는 다른 너무도 훌륭한 코스 요리다.

반면, 내가 경험한 현대식 고급 한식당은 대부분 프랑스식 기술과 표현력으로 한식을 재현하고자 하는 곳들이었다. 한국을 방문하는 지인들에게 현대적인 한식을 소개하고자 식당을 찾을 때마다 갈피를 잡기 힘들 때가 있다. 파인애플을 넣은 냉면을 마주한 기분이랄까. 만약 내가 한식 요리사라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최고의 쌀, 최고의 게 내장, 최고의 김, 최고의 달걀, 그리고 쓰고 남은 육수가 살짝 첨가된 볶음밥을 선보일 것이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한식의 변화가 아쉬운 이유#안드레스 솔라노 한국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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