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美 의회 연설’ 성공의 조건[특파원칼럼/문병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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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중국 수세적 메시지는 금물…
미래에 초점 맞춰 동맹 격 높여야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자로 초청했다. 윤 대통령은 올 3월 개원한 118대 미 의회에서 연설하는 첫 해외 정상이 된다. 매카시 하원의장은 공식 초청장을 공개하며 “한미 관계는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관계”라며 “합동회의 연설은 미래 한미동맹의 비전을 공유하는 이상적인 무대가 될 것”이라고 윤 대통령의 연설에 큰 기대감을 표시했다.

의회 연설은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선 확장억제 강화와 반도체 등 경제안보 협력 등 실질적인 현안을 논의할 한미 정상회담에 비해 그 중요성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미 의회는 예산 편성권과 조약 비준권 등 한국 의회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드물지만 의회 연설이 오히려 논란을 일으킨 전례도 적지 않다. 2015년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역시 의회 연설에서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던 이란 핵 협상을 비판했다가 심각한 외교 경색을 불러오기도 했다.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윤 대통령의 의회 연설이 미 정치권에 논란을 남길 가능성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번 연설이 한미동맹 강화를 토대로 글로벌 중추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비전의 시험대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성공적인 의회 연설을 위한 워싱턴 외교가의 조언을 종합해보면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메시지에 너무 치중하지 말라는 것. 해외 정상들의 의회 연설은 통상 40분 안팎이지만 의원들과 미국 국민에게 한 줄의 메시지만 남겨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6·25전쟁을 통해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거쳐 가장 성공적인 동맹으로 발돋움했다는 동맹의 성공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다가올 70년 한미동맹이 나갈 방향을 담은 한 줄의 핵심 메시지를 미국인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윤 대통령의 아이덴티티를 담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정치 경력이 짧은 윤 대통령은 미국 조야에서 직접 만난 이들이 손에 꼽을 정도다. 의회 연설은 네트워크를 외교의 기본으로 삼는 미국에 윤 대통령을 알릴 최적의 기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첫 의회 연설에서 영어로 “저는 45세를 맞았다. 하지만 제 나이는 러시아의 포격으로 수백 명의 아이들의 심장박동이 멈췄을 때 함께 멈췄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전장을 지키는 젊은 지도자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한 줄의 메시지가 무기 지원을 호소한 어떤 주장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호소력을 높이려면 번역문의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연설문 초고부터 영어로 작성해야 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에 대해 수세적인 인상을 줘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일본과 호주, 필리핀 등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이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에 적극 협력하고 나선 상황에서 미국의 이목은 오로지 중국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발언 수위에 쏠릴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의원들은 없다. 하지만 중국 문제를 두루뭉술하게 넘기는 알맹이 없는 연설로는 역효과만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의 의회 연설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7번째다. 한국은 미국의 가장 오래된 동맹으로 각각 8번의 의회 연설을 한 프랑스와 영국에 이어 가장 많은 정상 의회 연설을 한 국가가 된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성사된 이번 국빈 방문과 의회 연설이 동맹의 실질적인 격(格)도 그만큼 높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윤석열 대통령#미국 의회 연설#한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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