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이상훈]큰 결단이 만든 외교 자산, G8 가입에 쓰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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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韓에 양보하고 美-국제 무대서 보상받아
우리도 ‘보편 가치 위한 희생’ 세계 설득 가능

이상훈 도쿄 특파원
이상훈 도쿄 특파원
1950년대 한일 수교 협상을 시작할 때부터 양국 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한국에 하나라도 덜 양보할까 궁리하던 일본이 나름 물러선 적이 두 번 있다.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방한과 2015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한일 위안부 합의다.

전두환 정권은 1981년 ‘한국 방위는 곧 일본 방위이니 일본도 부담해야 한다’라는 ‘안보 경협론’을 내세우며 100억 달러를 요청했다. 난색을 보이던 일본은 나카소네 총리 취임 후 교섭이 급진전하더니 일본 총리로 처음 방한해 40억 달러 제공에 합의했다.

‘한반도 안정이 동아시아 안정’이라는 논리로 한국에 경협 자금을 내준 대가는 미국에서 받았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과 나카소네 총리의 밀월 관계를 토대로 사실상 미일 운명 공동체로 나갔다. 지난해 말 일본이 적(敵)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선언한 토대는 이때 닦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대 초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로 코너에 몰린 일본은 한일 위안부 합의로 100억 원을 내놨다. 좌파 무라야마 정권과 한일 화해 분위기가 최고조였던 오부치 정권도 하지 못한 총리 사죄 및 정부 예산 갹출을 끌어냈다. 결과적으로 국제 사회에서 ‘일본 책임론’은 희미해졌고 미일 공조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강해졌다.

‘상대에게 조금 양보해 국제 사회에서 큰 이익을 취하자’는 일본의 전략을 한국은 눈여겨봐야 한다. 과거에는 통 큰 외교를 할 역량도, 경제력도 부족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일본에 매달려 마음에도 없는 사죄를 받아봤자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망언 몇 마디면 흔적도 남지 않는다. 야당의 과장된 독도,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제기에 ‘국내용 퍼포먼스’로 대응한다면 경망스러울 뿐이다.

대국적 결단으로 얻은 외교적 자산은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명실상부 선진국임을 인정받는 데 쓰여야 한다. 어려움을 딛고 내놓은 윤석열 정부의 결단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천명한 한국의 절대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국제 무대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하겠다는 다짐과 신뢰를 토대로 ‘주요 8개국(G8)’ 구성원이 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사실상 G8’이라는 자화자찬으로 만족하지 말자는 뜻이다.

한국의 G8 진입은 뜬금없는 소리가 아니다. 미국이 제안한 G7 확대, 영국의 ‘민주주의 10개국(D10)’ 구상에 이미 한국은 들어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인도태평양 지역 협력 강화의 주요 파트너로 한국을 지목하고 있다. 물론 ‘아시아 유일 G7 회원국’ 일본이 흔쾌히 한국을 받아줄 확률은 매우 낮다. 유럽 주요국도 G7 확대에 반감이 있다.

하지만 세계 민주주의 블록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 국내 정치적 손해를 감수한 결단 앞에서 한국을 밀어낼 명분은 약하다. 세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기존 국제 질서 변경 시도로 ‘규칙(rule)에 따른 지배’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보편적 가치 수호를 위해 국익을 희생했다’는 스토리는 가치 동맹 규합을 내세우는 미국과 서방을 설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정학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강점을 지닌 한국은 미국 유럽 중동 동남아에 무기를 수출하며 평화 구축에 기여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협력 의지도 확실하다.

이달 한미 정상회담과 5월 G7 정상회의는 국제 사회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 헌신을 논의할 자리가 돼야 한다. 다만 단시일 내에 결론을 내겠다는 무리한 자세는 금물이다. 글로벌 질서 변화가 꿈틀대는 지금, 멀리 내다보고 첫걸음을 내딛자는 뜻이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한국의 g8 진입#외교 자산#g8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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