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만들기와 패션의 완성[패션 캔버스/하지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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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수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
하지수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 저절로 여름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 계절이 찾아왔다. 아울러 팬데믹과 함께 움츠러들었던 젊음도 폭발하고 있다. 3년 만에 다시 열린 물놀이 음악 축제는 연일 성황을 이룬다. 애프터 파티까지 만끽하고 동이 틀 무렵에야 귀가한 아들의 얼굴은 채 가시지 않은 축제의 흥분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몇 주 전부터 아들이 몸만들기, 왁싱, 태닝에 열을 올린 이유를 대형 물총 여러 자루를 들고 흠뻑 젖은 채 귀가한 이날 새벽에야 알았다.

과거에 몸은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에서 논의되던 대상이자 복식으로 통제되던 대상이었다. 서양에서는 여성의 신체를 코르셋으로 졸라매 허리를 잘록하게 만들었다. 파딩게일(치마 속에 착용한 둥근 틀)로 치마를 부풀려 혼자서는 입을 수도 벗을 수도 없는 거대한 종 모양 실루엣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작은 발에 의미를 부여했던 중국에서는 엄지발가락 외의 발가락은 어릴 때부터 힘껏 묶어 자라지 못하게 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성장하는 동안 아랫입술에 차츰 더 큰 나무판을 갈아 끼우면서 성인이 되었을 때 입술이 충분히 돌출되도록 만들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인간은 유행하는 패션을 위해 몸을 구속해왔다. 몸은 그저 복식을 위한 옷걸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온 셈이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기술 발전으로 사회문화, 삶의 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화하면서 몸과 패션의 관계도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으로 옷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자 의복 디자인도 이에 맞춰 단순해졌다. 또 교통수단의 발달로 이동과 여행이 빈번해지면서 부피가 작고 관리하기 편한 의복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동시에 가볍고 튼튼한 신소재가 개발된 덕분에 의복 관리와 보관이 쉬워졌고, 옷장과 여행가방의 크기도 덩달아 작아졌다.

결정적으로 20세기 중반 이후 몸에 대한 인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몸이 자아 정체감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개인의 노력과 의지로 바꿀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중은 몸을 억압하고 지배하던 패션에서 해방됐다.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는 잘 가꾼 몸을 통해 패션을 완성하는 트렌드가 생겨났다. 손바닥만큼 작고 흐늘거리지만 몸에 착용하는 순간 그 스타일을 완성하는 티셔츠와 레깅스가 대표적이다.

잘 가꿔진 몸을 소유해야만 더 멋진 패션 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이 때문에 현대인들은 몸만들기에 열중한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사진으로 촬영해 기록하는 보디 프로필 제작이 유행하는 등 다양한 몸만들기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패션의 과도한 억압으로부터 몸의 해방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손뼉 칠 만하다. 그러나 오늘도 웨이트 트레이닝에 몰두하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걱정이 든다. 우리의 몸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패션의 사회적인 권력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수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
#몸만들기#패션#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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