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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시장·자유 강조해 놓고 인플레엔 ‘新관치’로 대응하는 정부

입력 2022-06-29 00:00업데이트 2022-06-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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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시내 한 은행 외벽에 대출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날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최고금리가 연 6%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2022.6.26 뉴스1
연 7% 선을 넘었던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며칠 새 6%대로 내려왔다. 금융감독 당국과 여당이 ‘이자 장사’를 강하게 비판한 뒤 은행들이 황급히 대출금리를 인하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정부가 내린 유류세가 소비자가격에 제대로 반영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점검을 벌이고, 정유사들의 가격담합 여부도 조사하기 시작했다. 14년 만에 6%대로 치솟고 있는 소비자물가, 미국 긴축의 영향으로 급등한 금리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시장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들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면서 예금-대출 금리차 확대로 큰 이익을 낸 은행들에 경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금리 상승기에 금융소비자 이자부담이 크게 가중되지 않도록 금융당국, 금융기관이 협력해 달라”고 당부한 직후였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정유사들도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선 안 된다”며 정유업계의 고통 분담을 요구했다. 이 발언들이 나온 후 시중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6%포인트 떨어뜨렸고, 석유업계는 “유류세 인하분을 즉각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원하는 대로 됐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거의 없다. 당국의 눈치를 보는 은행들이 눈에 많이 띄는 일부 대출금리만 낮추고, 대다수 소비자에게 적용되는 금리는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정유회사들이 휘발유 값 인하를 약속해도 직영이 아닌 주유소까지 가격인하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 올해 초 문재인 정부가 치솟는 외식가격을 잡겠다며 치킨, 피자 값을 공개하는 ‘외식가격 공표제’를 도입했지만 효과가 없었던 것도 그만큼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려는 정부 시도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집권한 정부 여당은 지금 고물가·고금리의 벽에 부딪혀 딜레마에 빠졌다. 물가와 금리를 시장에만 맡겨두자니 ‘정부가 손을 놨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민간 주도 경제’를 하겠다는 정부가 역대 정부와 똑같은 관치(官治)로 기업 손목을 비트는 것은 스스로 세운 국정원칙을 허무는 일이다. 정부는 시장기능 회복과 규제완화에 집중하면서 민간의 자율경쟁을 유도해 물가를 잡는 시장 친화적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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