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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정용관]팬덤정치, 그 치명적 유혹

입력 2022-05-20 03:00업데이트 2022-05-2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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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딸’ ‘잼파파’… 가벼이 넘길 수 없는 희한한 현상
與든 野든 늘 사리분별 따지는 집단지성 추구해야
정용관 논설위원
전통 미디어에선 어감 탓인 듯 자주 인용되지 않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개딸’이 화제가 된 지 좀 됐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20, 30대 여성들을 말한다. ‘개혁의 딸’이란 뜻이란다. 개이모 개삼촌 개할머니란 말도 등장했다. 양아들도 있다. ‘양심의 아들’의 줄임말이다.

며칠 전 홍익대 앞 거리유세에 이 전 후보가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와 함께 나타났다. 유튜브로 당시 현장을 봤다. 이 전 후보가 연단에 오르자 젊은 여성들이 “귀여워”를 외친다. 이 전 후보가 “잔인한 현실이 있다. 제가 내년이면 환갑이다”라고 하자 이들은 “아기다, 아기”라고 했다. ‘잼파파’로 불리는 그가 송 후보를 ‘영기리보이’로 지칭하며 “귀엽지 않으냐”고 하자 이들은 “귀여워”를 연발했다.

정치인 팬덤의 원조는 노사모다. 바보 노무현을 향한 순수한 부채의식 같은 뭔가가 있었다. 그 정치적 에너지를 바탕으로 그는 대통령이 됐다. 개딸 현상은 차원이 다르다. 어느 대학생이 자신이 개딸이 된 과정을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젊은 여성들이 사회를 바꾸는 정치적 주체로 등판하는 계기가 됐다.” 따지고 보면 페미니즘 등 젠더 갈등 이슈가 깔려 있는 것 같다.

이 전 후보는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 운운했지만 특정 정치인과 지지자들이 서로를 아빠와 딸로 부르는 것 자체가 정상으로 보이진 않는다. 누구누구에 대한 ‘사모’ 차원을 넘어 혈연 수준에 버금가는 감정적 유대로 얽히면 이는 무서운 정치 형태로 변질될 수 있다. 성희롱 발언 논란에 휩싸인 최강욱 의원에게 “앞만 보고 달려. 뒤는 개딸들이 맡는다” 등의 리본이 달린 화환이 민주당사 앞에 등장한 게 단적인 예다. 개딸 여론이 국회의장 경선에 영향을 미칠 정도다. 장난기 어린 표현이나 놀이로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어느 의원은 “지금 ‘개딸’에 환호하는 민주당의 모습은 슈퍼챗에 춤추는 유튜버 같다”고 일갈했다.

팬덤은 자발적인 듯하지만 특히 정치 영역에선 그리 돌아가지 않는다. 팬덤의 심리를 끊임없이 살피고 구미에 맞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관리하는 정교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얘기다. 극성 팬덤을 동원하고 조종해 여론을 조성하고 당내 의사결정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려 한다. 극성 지지층 역시 열혈 지지자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관철하며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개딸을 자처하고 나선 2030세대 일부 여성이 문제라는 게 아니다. 이들을 포함해 점점 극단화하는 정치 팬덤 문화의 위험성이 우려되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이 휘둘리고 정치도 난장(亂場)으로 치닫는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궁극적으로 망치게 할 수도 있다. 말 없는 다수 시민의 반감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反)지성주의’를 말했다. 탈진실의 시대에 대한 경고인지, 점점 왜곡되는 팬덤 정치 문화를 지적한 건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윤 대통령 역시 팬덤 정치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빠에 이어 윤빠도 서서히 목소리를 키워 가고 있다. 정치인들에게 팬덤은 마약과도 같다. 협치(協治)와 법치(法治)의 조화를 모색해야 하는 윤 대통령도 국정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통합의 정치와 팬덤 정치의 딜레마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극성 팬덤, 이에 편승한 정치는 당장은 득이 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치명적인 독이 된다. 여든 야든 늘 사리분별을 따지는 집단지성을 추구해야 궁극적인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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