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택동]‘前警예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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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단계에서 끝내야 합니다.” 한 중소규모 로펌이 홈페이지 첫 화면에 내건 문구다. 로펌들이 성공 사례를 홍보하는 글에서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상대방의 증거를 적극 반박했다” “경찰 단계에서 수사기관과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며 논증을 펼쳐 나갔다” 같은 내용이 종종 눈에 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부쩍 커진 경찰의 권한에 맞춰 변호사업계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 이렇다 보니 경찰 출신을 찾는 로펌들이 많아졌고, 전직 경찰관들의 몸값도 올라가고 있다.

▷올해 들어 3월까지 로펌에 채용된 전직 경찰은 총 16명이다. 김앤장, 태평양, 세종 같은 대형 로펌들도 전직 경찰 영입에 동참했다. 로펌에 취업한 전직 경찰이 2020년 5명에서 지난해에는 48명으로 확 늘었는데, 지금 추세대로라면 올해는 더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한 중견 변호사는 “로펌에 사건을 문의할 때 ‘경찰과 연락이 닿을 만한 변호사가 있느냐’고 묻는 의뢰인들이 제법 있다”고 전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경찰 출신들의 전관예우를 활용하는 ‘전경(前警)예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1월 이뤄진 검경 수사권 조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이전까지는 경찰이 수사를 하더라도 어떻게 처분할지는 검찰이 결정했다. 그래서 경찰 단계에서는 변호사를 쓰지 않고 검찰로 넘어갔을 때 선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경찰은 ‘수사종결권’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 경찰이 수사한 뒤 불송치(혐의 없음) 결정을 하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사건은 그대로 끝난다. 경찰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찰 출신들이 활약할 공간이 대폭 넓어진 셈이다.

▷로펌에 취업하는 전직 경찰들의 직급은 다양하지만 보통 총경, 경정급을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일선 경찰서의 서장, 과장에 해당하는데, 법률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은 물론 실무 경험과 인맥도 풍부하다. 또 일부 로펌에선 변호사 자격이 없는 고위직 출신 경찰을 고문으로, 초급 간부 출신을 전문위원이나 위원으로 영입하고 있다. 이들이 직접 변호를 맡을 수는 없지만 경력을 활용해 간접적으로라도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기를 바랄 것이다.

▷앞으로 ‘검수완박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일반 사건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제한되는 등 경찰의 권한은 더 커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전관예우의 주무대가 검찰에서 경찰로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경찰 출신 변호사와 현직 경찰관의 사적 접촉 시 사전 신고 의무를 강화하는 등의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전경예우가 현장에서 뿌리를 내리기 전에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횡설수설#전경예우#경찰#로펌#검수완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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