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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어의 이수귀의 돌발성 난청 치료법[이상곤의 실록한의학]〈116〉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입력 2021-12-03 03:00업데이트 2021-12-0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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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의사가 환자를 치료한 임상 경험은 의학 발전의 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불행히도 한의학적 임상 경험을 담은 조선시대 기록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드물게 남은 임상 경험 서적은 무척 귀한 책이다. 그중에서도 영조 때 어의 이수귀가 남긴 ‘역시만필’이라는 책은 최고봉으로 꼽힌다. 그는 자신의 치료 경험담을 상세히 기록했다. 1690년 의과에 합격한 그는 중국 사신을 진맥하는 등 정밀한 의술로 이름을 날렸다.

책 내용 중 갑작스러운 난청에 시달리던 선비 정생을 치료한 대목은 그의 신묘한 의술과 인간미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는 치료비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정생에게 돈이 들지 않는 치료법을 소개해 난청을 치료했다. 대나무 증기를 쐬는 게 바로 그것. 물로 끓인 통대나무를 멀리 귀에 대고 뜨거운 기운을 번갈아가면서 쐬는 방식이었다. 안생이라는 선비에게도 같은 치료법을 알려줬는데 이후 그는 미세한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귀에 온기를 불어넣어 청력을 회복하는 이수귀의 치료법은 한의학적 사유의 결과다. 정월 대보름 풍속 중 귀밝이술을 마시는 풍습과 비슷한 이치다. 체열 사진을 찍어보면 귀 주변은 찬 푸른색이지만 귓구멍은 붉게 타오른다. 우리가 손이 뜨거울 때 무의식적으로 귓불을 잡는 이유도 그 부분이 차다는 걸 몸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소리를 듣는 영역인 귀 안은 가장 뜨거운 곳이다. 귀밝이술은 술이 가진 양기(陽氣)로 청력을 보충한다. 귀밝이술, 즉 이명주(耳明酒)의 명(明)은 해를 의미한다. 태양처럼 밝은 에너지가 청력의 근원이 됨을 암시한 것. 태양은 낮에 떠올랐다가 밤에 휴식하면서 힘을 축적한다. 청력도 밤에 힘을 축적해 낮에 사용하는 배터리와 같다.

최근 이명(耳鳴)을 비롯해 난청 환자가 국민의 20%가 될 정도로 많아진 것은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예전과 달리 일찍 잠을 자지 않는 생활습관이 귀의 건강을 해친 탓이다. 이명과 난청 환자의 상당수는 쉽게 잠들기 힘들다고 말한다. 잠이 부족하면 이명이 심해지고 청력이 더 떨어진다.

한의학 교과서가 말하는 돌발성 난청의 원인은 여럿이지만 ‘승정원일기’를 보면 좀 더 구체적이다. 대부분 듣지 못하는 괴로움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사직한 신하들의 상소에서 추려 낸 것들이다. 승정원일기가 지목한 첫 번째 원인은 스트레스다. 인조 때 동부승지를 지낸 권확은 “자식이 갑자기 죽고 난 뒤 병이 생겼다”고 했다. 둘째는 과로다. 인조 때 형조참판을 지내고 서인의 영수였던 김장생과 인조판서 김형남은 기혈이 쇠약한데도 업무를 지속하다 난청이 찾아왔다. 셋째는 질병 후유증이다. 인조 때 사간원 사간 등을 지낸 심동귀는 감기를 오랫동안 방치하다 난청이 생겼고, 숙종 때 예조참판 등을 지낸 홍처량은 계속된 소화기 질환이 문제가 됐다. 경종 때 훈련대장을 지낸 이삼은 “종기 치료 이후 갑자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과로와 스트레스, 큰 질병 이후 난청이 발생했다는 점은 요즘 환자와 다를 바가 없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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