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광영]그날 밤 보호관찰관은 왜 차 핸들을 돌렸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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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차장
신광영 사회부 차장
전자발찌 부착자인 강윤성의 집까지는 차로 13분 거리였다. 지난달 27일 서울동부보호관찰소 당직자들은 강윤성이 야밤에 무단 외출했다는 경보를 듣고 출동하던 길이었다. 0시 35분경 그의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직원들은 그와 통화를 마치고는 차 핸들을 돌렸다.

56세인 강윤성은 2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17세 때부터 14차례 감옥을 오갔다. 나오면 몇 달 뒤 더 큰 죄로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하는 ‘범죄 인생’이었다. 올 5월 출소 전 15년의 수감생활은 강도강간으로 5년을 살고 나온 지 4개월 만에 벌인 짓의 대가였다. 그는 여성 혼자 운전하는 차량을 들이받은 뒤 여성이 차에서 나오는 순간 납치해 돈을 빼앗고 성추행했다. 30일간 40명이 당했다.

보호관찰관이 출동했던 그날 밤, 무단 외출은 강윤성이 범행 과정에서 유일하게 내비친 빈틈이었다. 당시 그의 집에는 흉기와 공업용 절단기, 몇 시간 전 살해한 여성의 시신이 있었다. 이미 벌어진 참극과 앞으로 벌어질 시나리오가 집 안에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집 앞까지 온 보호관찰관들은 “편의점에 다녀왔다”는 강윤성의 말에 차를 돌렸다. 그의 이상행동을 감지했던 발목의 족쇄는 그 순간 무력화됐다.

당시 보호관찰소 차에는 2인 1조의 당직자 2명이 타고 있었다. 서울 동부지역 전자발찌 부착자 110명이 이들의 감독 대상이었다. 현장에 출동하면 휴대용 기기로 나머지 109명의 동선을 볼 수 있지만 유사시 즉각적인 대응이 쉽지 않다. 그래서 부착자가 집에 돌아온 것으로 확인되면 바로 현장에 가는 대신 추후에 이탈 사유를 조사하는 게 관행이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전자감독 부서 보호관찰관의 19%가 전자발찌 부착자로부터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욕설이나 협박, 모욕을 당한 경우는 76%다. 이들의 가장 큰 고충은 ‘반항적인 부착자들과의 관계 형성’이다. 언제 사건이 날지 몰라 불안하고, 제재 수단이 부족해 부착자에게 끌려 다닌다고 한다. 보호관찰소 관계자들은 “만약 그때 당직자들이 집에 들어가려 했다면 치명적인 공격을 당했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도 보인다. 강윤성이 살해한 여성 시신을 집에 두고 버젓이 무단 외출을 감행한 것은 그렇게 해도 꼬리가 안 잡힐 거라고 자신했기 때문일 수 있다.

집에 시신이 있을 가능성을 상정하지 못한 것은 보호관찰관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시스템적 무능’의 결과다. 최악을 상상하는 능력은 상상한 것을 검증할 수 있게 운신의 폭이 보장될 때 생겨난다. 더 많은 예산을 들여 감시자를 늘리고, 이들에게 더 강한 권한을 부여해 다른 기본권의 희생을 감수해야 가능한 일이다. 강윤성의 집에 5차례나 갔지만 영장이 없어 번번이 되돌아온 경찰 역시 문을 뜯고라도 들어가게 하려면 일부 인권침해 소지를 용인하는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전자발찌는 범죄자의 사회 복귀와 시민의 안전을 절충하는 방안으로 도입됐다. 범죄자라도 죗값을 치른 후에는 삶을 이어가야 하니 말이다. 강윤성 사건은 그들을 품기 위해 치러야 할 ‘공존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강윤성#보호관찰관#시스템적 무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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